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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moon before the Marrige
 

w. 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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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2마일. 우성과 명헌이 차로 횡단하기로 마음먹은 거리는 공해를 가로질러가도 5시간이 걸릴 정도로 까마득히 멀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보스턴까지 미국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하는 일은 미국 지리를 온전히 모르는 동양인이 하기에는 무모하다 못해 미친 도전이었다. 이런 미친 짓을 누가 하자고 한 걸까. 명헌은 고작 1시간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형! 그래도 나름 웨딩카인데! 남자의 자존심이 있죠!]

 

자존심 운운하며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카를 렌트해 왔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견했어야 했는데. 명헌은 불필요한 돈지랄을 한 우성을 빤히 바라보며 흙먼지를 안면에 고스란히 받아 내었다. 공교롭게도 렌트한 차가 뚜껑이 고장 났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었으나 애초에 지금 상황 중 그 어느 것도 말이 되는 것이 없긴 했다. 농구 코트 위에서는 그렇게 팽팽 돌아가던 머리가 왜 그 순간에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둘의 무모한 횡단의 출발지가 로스앤젤레스라는 것도 잠시 망각한 탓에 명헌은 미국 땅의 광활함을 아주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바닥이 여실히 느껴지는 승차감과 훤히 열린 뚜껑 위로 마구 쏟아지는 흙먼지까지 이대로 황야와 한 몸이 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횡단하는 루트가 이렇게 허허벌판일 줄 몰랐어요. 미안해요, 형.”

“응, 알았으니까, 우성. 울면 흙이 얼굴에 엉겨 붙는다, 뿅. 울지 말고 운전해, 뿅.”

 

최대한 입을 다물고 말을 했음에도 입 안으로 흙먼지가 기어들어왔다. 명헌은 혀끝에 거슬리게 맴도는 흙먼지를 도로로 퉤, 뱉었다.

 

‘우성, 근데 따지자면 이건 웨딩카는 아니지 않냐, 뿅.’ 

 

명헌은 문득 떠오른 말을 삼켰다. 딱히 우성의 로망을 지켜주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저 입을 벌리는 순간 다시 밀려들어 올 흙먼지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명헌은 눈가가 따끔거리는 듯 눈물을 뚝뚝 흘리는 우성의 눈가를 소매로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고작 그 손길 하나에 감동한 우성이 혀엉, 하고 울먹이는 소리를 내뱉으려는 걸, 명헌은 손으로 텁, 하고 막았다. 미국 서부의 메마른 벌판은 이상하게도 포장 도로 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흙먼지가 모래 폭풍처럼 둘을 덮쳤다. 명헌은 우성이 더 이상 흙을 먹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기에 무어라 웅얼거리는 우성의 입을 조용히 하라는 듯 손으로 꾹, 틀어막았다. 우성이 겨우 잠잠해져 토라진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물 때 즈음에야 명헌은 복잡한 머릿속을 천천히 정리할 수 있었다.

 

‘진짜 어쩌다 이 지경이 됐지.’

 

생각은 하루하루를 거슬러 올라, 기어이 1년 전까지 기어 올라갔다. 꼭, 바닥부터 기어올라가던 열여덟 윈터컵 때처럼 말이다.

 

*

 

“저랑 결혼해주세요, 명헌이 형.”

 

명헌은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어묵 볶음을 툭, 하고 미끄러뜨렸다. 우성이 장장 2년 만에 한국에 온 시점이었다. 명헌은 우성이 내뱉은 저 말이 오랜만에 귀국한 기념으로 사내 둘이서 음식점에 들어와 김치찜을 4인분을 시켜 놓은 상황에서 들을 말인가, 아주 잠시 고민에 빠졌다. 대답도 않은 채 잘 익은 고기를 우적 베어 먹으면서도 명헌은 우성의 프러포즈가 감명 깊다기보다는 너는 무슨 그런 말을 김치찜 먹으면서 하냐, 뿅, 싶었다. 

 

세기말이 지나고 밀레니엄이 찾아왔고, 우습게도 종말론이니 지구멸망설을 토로하던 이들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요란스레 맞이한 밀레니엄에서도 3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하늘을 나는 자동차 따위도 없었고, 순간이동 기기도 없었다. 그렇게 놀랄 것 하나 없이 평탄하던 이 밀레니엄에 우성의 청혼이라고 특별할 건 없었다. 

“우성, 그거 몇 번째인지 아냐, 뿅.”

 

그리고 명헌의 어미도 베시에서 용으로, 용에서 욤으로. 그렇게 몇 번이고 돌고 돌아 다시 열여덟의 뿅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요컨대 우성의 프러포즈도 그렇게 돌고 돌아오는 연례행사와 같았다. 둘이 그다지 큰 굴곡 없이 만나는 10년. 그 기간의 절반인 5년 내내 꼬박꼬박, 매해 일어나는 결혼기념일 같은 이벤트와 다를 바 없었다. 우성은 심드렁한 표정의 명헌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다섯 번째요. 하지만 들어보세요, 형. 이번에는 이유가 있다고요.”

 

그래도 몇 번 들었다고 제 반응에 빼액하고 우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명헌 못지않게 담담한 투로 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명헌은 입안 한 가득 쌀밥을 밀어 넣고 씹으며 우성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았다. 품속에 뭘 그리 소중하게 넣어 온 것인지 속주머니를 한참을 뒤지던 우성이 꼬깃꼬깃한 무언가를 꺼내 펼쳐 들었다. 그렇게 구겨진 무언가를 한참동안 펼친 우성이 명헌의 앞에 바싹 내민 종이는 영문으로 가득한 미국 신문이었다. 

 

[2003년. 매사추세츠 주 주법원 동성혼 허용.]

 

우성 탓에 미국 문턱을 닳도록 드나든 탓인지 명헌은 이제 제법 영어가 모국어만큼이나 익숙해진 참이었다. 명헌은 벌건 국물을 숟가락으로 두어 번 떠먹으며 느릿한 시선으로 우성이 내민 신문 쪼가리를 읽었다. 좀 짜네. 와중에 드는 감상은 아주 단순했다. 김치와 고기 간은 괜찮은데 국물은 짜다는 것. 명헌은 숟가락을 내려놓곤 팔짱을 낀 채 우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거랑 우성의 다섯 번째 프러포즈가 무슨 상관이냐, 뿅.”

“법적으로도 형이 내 거라고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참아요!”

 

뭐, 솔깃한 말이긴 했다. 고작 성당이나 교회에서 반지만 교환하는 허울뿐인 결혼식이 아니라 미국, 그것도 자그마한 하나의 주에 한정적이나마 정우성과 이명헌은 법적 부부임을 선언할 수 있게 되는 거였다. 서류상 둘 사이에 부부라는 명칭이 생긴다는 건 제법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긴 했다. 물론 그런 것보다 더 명헌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건 다섯 번째 프러포즈인 주제에 한결같이 손을 덜덜 떨며 긴장하는 저 연하 애인의 모습이었다. 담담한 표정과 말투로 애써 포장하고 있었으나 발갛게 물든 귓가라거나 덜덜 떨리는 손은 몇 년 째 변함없이 서툴고 귀여웠다. 이쯤이면 정말 수락해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애초에 딱히 거절한 적도 없지만.’

 

명헌은 우성의 프러포즈 때마다 자신이 했던 말을 가만히 떠올렸다.

 

[아직은 아르지 않나용.]

[우성 결혼하기에는 이제 대학 리그다, 베시.]

 

절묘한 수락이긴 했으나 직관적으로 듣자면 거절로 들릴 법한 말이긴 했다. 따지자면 시기가 이를 뿐, 너와 결혼을 하긴 할 거라는 의미를 담은 말이었는데. 우성은 때때로 직설적으로 표현해주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았다. 곧고 직진뿐인 우성답다면 우성다웠다. 패스는 그렇게 찰떡같이 받으면서 말에 포함된 마음은 제대로 못 받는 모양새가 몇 년간 한결같다면 한결 같았다. 명헌은 자신이 대답해줄 때까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김치찜은 입에도 안 댈 것 같은 모습에 가만히 제 손을 내밀었다. 왼손을 내밀고 손등을 위로 한 채 손가락을 편 자세는 전방 100미터 앞에서 봐도 반지를 끼워달라는 모양새였다. 수락과 같은 행동에 우성의 눈이 더 커질 것도 없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에, 진짜? 근데 형 왜 하필 여기서 수락이에요! 나 반지도 집에 두고 나왔는데!”

 

‘애초에 김치찜 집에서 프러포즈한 게 누군데.’

명헌은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내민 제 왼손가락을 까딱였다.

 

“우성, 내 손봐라, 뿅.”

“아?”

 

눈물이 찔끔 맺힌 눈가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우성은 명헌의 손에 자리하고 있는 반지를 보며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멍하니 명헌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명헌은 그 표정을 보며 작게 바람이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허공에서 덜덜 떨리던 우성의 손이 명헌의 왼손을 부여잡고 그 위에 끼여진 반지를 차근히 훑었다. 명헌의 왼손 약지에는 작년 이맘 때 즈음 우성이 주었으나 청혼 거절 – 로 착각한 – 후 도로 가져갔던 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물가물 그 반지가 몇 번째 프러포즈 버전이었는지 떠올리던 우성이 별안간 울컥한 표정으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 때! 거절 해놓고!”

명헌은 우성의 착각을 정정해 줄 생각은 않은 채 제 손을 꽉 붙들고 있는 손을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덤덤한 낯으로 푹 익은 김치를 우성의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어차피 내 거 잖아, 뿅. 아니면 누구 줄 사람 있었나, 뿅.”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다시 줘요. 내가 끼워주고 싶었던 말이에요!”

“김치찜 집에서는 싫다, 뿅.”

밥 먹고 집에 가서.

 

어쩔 수 없다는 듯 터진 웃음에 우성의 낯이 김치찜 국물보다 더 벌겋게 익었다. 새빨개진 우성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공깃밥을 연거푸 와구와구 퍼먹기 시작했다. 명헌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우성의 밥 위에 고기를 한 점 올려 주었다. 툭, 무심하게 흰 쌀밥 위에 얹어진 고기에 우성이 힐끔 명헌을 보더니 숟갈 가득 퍼서는 입에 밀어 넣었다. 볼은 빵빵해져서는 꾹 다문 입술을 우물거리며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밥 먹는 모습이 예뻐 보이면 데리고 살아야 된다고 하던데. 어머니 말이 딱 맞구나, 싶었다.

 

이명헌의 법적 배우자, 정우성.

 

괜스레 속으로 곱씹은 짧은 문장에 심장이 벌렁 거렸다. 상상만으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가 흐르듯 짜릿했다. 같은 사내인 우성을 만나면서 한 번도 가능할거라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게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니 지금이라도 당장 우성을 데리고 미국으로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나까지 이러면 안 되겠지.’

 

명헌은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며 테이블 아래로 왼손 약지에 자리한 반지만 매만졌다. 표면이 매끈하고 얇게 성형된 링 가운데에 작게 박힌 사파이어가 손끝을 간지럽혔다. 경기에 방해되면 안 되니 심플한 걸로 했다고 했던가. 우성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는 그 어느 것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우성은 늘 반지 디자인이 문제였다는 듯 매 해 새로운 반지를 준비하곤 했다. 우성 돈 많은 거 알고 있다, 베시. 세 번째 프러포즈였던가. 기어이 세 번째로 반지를 맞춰 오는 통에 명헌은 한숨과 함께 타박 아닌 타박을 내뱉어야 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포기를 모르는 남자는 북산의 어느 선수 한 명뿐 일거라 여겼는데 제 애인도 그와 동류일 줄은 몰랐다.

 

‘웨딩링정도는 내가 사볼까.’

 

명헌은 자신이 반지를 내밀었을 때 우성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막연한 상상 속 우성의 얼굴은 아마 현실보다 더 좋진 못할 터였다.

 

“보스턴은 늘 날이 좋았다고 했던 것 같아요.”

 

봐라. 해맑게 웃는 우성의 얼굴조차도 상상 그 이상인데.

 

“그래, 야외도 좋겠네, 뿅.”

 

명헌은 짧게 대꾸하며 그의 밥 위에 연신 고기와 김치를 얹어 주었다. 혼자 먹어 내내 줄지 않던 김치찜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장님, 공깃밥 하나 더 주세요. 명헌은 추가 주문을 하고는 우성의 입가에 묻은 양념을 티슈를 닦아 주었다. 우성의 웃는 낯은 서른을 앞둔 청년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열일곱 그 때와 똑같았다.

 

 

*

 

말을 끝낸 후 당장이라도 결혼식을 올릴 것처럼 굴었으나, 실제로 결혼식은 생각보다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이 하나 있다면 미국에서 하는 탓에 부를 사람이 한정적이라는 것이었다. 우성과 자신의 사이를 알고 있는 산왕 시절의 이들과 우성과 미국에서 함께 지냈던 북산의 몇 명. 그리고 현재 우성의 구단에 친한 선수 몇 명과 양가 부모님들이 하객 전부였다. 하지만 사람이 적다고 준비할 게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흘러가듯 야외도 좋겠다고 한 말 탓에 우성은 정말로 해변에서의 야외 결혼식을 추진했다. 말 한 마디 허투루 듣지 않는 그 커다란 애정이 귀엽기도 했으나 결혼을 준비하는 상황에서는 마냥 귀엽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또 준비해야할 게 뭐가 남진 않았겠지….’

 

세레머니를 위해 결혼 주례를 섭외하는 게 가장 큰 난황이었다. 우성과 명헌은 종교가 없었기에 대다수 교회 목소나 성당의 신부를 모시는 이들과는 달리 주 정부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주례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미국은 아무나 주례를 설 수 없다니 그 나라는 참 결혼도 쉽지 않네, 뿅….”

 

주로 은사들을 주례로 모신다는 제 상식이 깨진 순간이었다. 명헌은 우성으로부터 새삼스러운 문화 차이를 처음 전해들은 후 한참이나 전화 너머로 침묵을 지켜야 했다. 국내에서 섭외도 불가능하니 주례를 찾는 건 온전히 미국에 있는 우성의 몫이었다. 수소문 끝에 겨우 우성의 같은 구단에 선수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를 섭외할 수 있었다. 목사가 용케도 동성혼의 주례를 서주는구나, 명헌의 순수한 감탄에 전화 너머 우성은 그저 웃었던 것 같다.

 

리셉션이나 본식의 장소. 리셉션 음식이라거나 하객의 자리 배치 같은 것들까지 정해야 할 것들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끝이 보이지 않았다. 6월 무렵 보스턴의 해가 지는 시간을 생각해 식은 몇 시에 시작하는 가부터, 리셉션은 어느 장소로 옮겨서 진행하는 것까지. 우성과 명헌이 미국과 국내로 떨어져 있는 탓에 시차와 거리의 문제로 상의하고 결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이제 일주일 남았네요.”

“애들이랑 부모님은 오늘 출발이라고 했던가, 뿅.”

“맞아요. 먼저 가서 관광하고 있으라고 했어요. 데비가 안내도 잘 해줄 거랬어요.”

“다행이다, 뿅.”

“하, 준비할 땐 뭐가 이렇게 많아! 하고 얼른 하고 싶어서 혼났는데 그래도 일주일 남았다니까 엄청 두근거려요.”

 

우성이 반쯤은 황홀한 낯으로 명헌의 곁에 바싹 붙어 누웠다. 미국에서의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우성은 미국에 있는 대신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평소 우성이 귀국하면 머물던 명헌의 작은 아파트를 처분하고 둘이 함께 지낼 집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따지자면 1년에 국내에 머무르는 날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우성이었으나 나름의 신혼집 느낌을 미국과 한국 두 곳 모두에 내고 싶었다.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명헌의 욕심이었다. 우성이 돌아 올 장소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하고 싶다는 독점욕에 가까운 욕심이었다. 그 탓에 먼저 보스턴으로 출발한 이들과는 달리 이사를 앞둔 우성과 명헌의 출국까지는 아직 사흘이 남은 참이었다.

 

“별 일 없겠죠?”

“무슨 일이 있겠어, 며칠 사이에.”

“그죠? 사실 요즘 매일매일 꿈을 꿔요.”

 

명헌은 우성의 쪽으로 돌아누워 그를 마주보았다. 이어 말하라는 듯 눈을 느리게 깜빡이니 우성이 해사하게 웃으며 더욱 바싹 붙어 누웠다.

 

“주례가 성혼선언문을 읊고, 결혼서약서에 형이랑 제가 사인하는 장면이 매일 꿈에 나와요.”

“그렇게 좋아?”

 

명헌은 이따금 제 발목까지 차오르는 의문에 혼자 잠긴 발끝을 말끄러미 내려다보곤 했다. 몇 해가 가도록 우성의 마음은 어떻게 이토록 한결같을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까지 더 커질 수 있을까. 물론 자신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변한 적이 없었다지만, 사랑을 영영 모를 것 같던 우성이 이토록 한결 같다는 건 참 신기했다.

 

‘나만 예외라는 걸까. 그렇다면 그거대로 신기한 일인데.’

 

곰곰이 생각에 잠긴 사이 우성이 피곤하다며 품 안에 엉겨 붙어왔다. 명헌은 팔을 벌려 그가 편하게 몸을 끌어안게 두었다. 가슴팍에 파묻힌 얼굴에서 나른한 한숨이 터졌다. 명헌은 그의 정수리에 입술을 파묻듯 입을 맞추며 등을 토닥였다. 피로에 녹아든 우성의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달콤하게 들렸다. 

 

“나는 형이 알려준 모든 처음이 좋아요. 결혼식도 형과 함께 하는 처음이니까 분명, 지금까지의 그 무엇보다 좋을 거예요.”

 

한없이 상투적인 저 사랑 표현조차도 그 어떤 고백보다 특별하게 들렸다.

 

“너한테 사랑을 알려준 게 내가 처음이라 다행이다, 뿅.”

“애초에 형이 아니면 사랑이 될 사람이 없었을걸요.”

 

그거 하나만큼은 확신해요.

그리 말하며 행복하게 웃는 낯에 제 입술에도 똑 닮은 미소가 자리한다. 함께 한 10년 그리고 11개월. 그 기간 동안 우성이 자신과 하는 처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사이 명헌은 우성에게 소년 같은 미소를 배웠다. 명헌은 어느새 곤한 숨을 내며 잠이 든 우성을 품 안에 한가득 끌어안았다.

 

‘너야말로 내 모든 처음인데.’

 

명헌은 그리 생각하며 따끈한 몸을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어쩐지 우성과 빠듯하게 붙어 끌어안고 자던 이 좁은 침대가 그리워질 것 같았다.

 

*

 

좁은 침대에서 행복한 결혼식을 꿈 꾼 게 고작 사흘 전이었던 것 같은데. 

명헌은 힘겹게 도착한 미국에서 지치다 못해 너덜너덜한 낯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장장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의 끝에 미국에 도착한 것까진 좋았다. 그 미국이 정확히는 보스턴이 아니라 로스앤젤레스라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미국 동부 쪽에 산발적으로 일어난 허리케인 탓에 난기류가 심해 그 쪽으로 비행기가 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불시착이 줄줄이 이어지던 로스앤젤리스 공항에 기어이 하늘을 떠돌던 우성과 명헌이 탄 비행기마저도 착륙했다. 수없이 내려앉는 비행기로 공항은 난장판이었고, 일정 탓에 미국 동부 쪽으로 가기 위한 이들로 공항 데스크는 인산인해였다.

 

“뭐래?”

“보스턴은 괜찮데요. 날씨도 괜찮고. 호텔에 연락했을 때는 다들 관광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다행이 다들 별 일 없는 것 같아요. 비행기는요?”

“안된데. 보스턴은 공항이 피해 입은 건 없어서 갈수는 있는데 기류 때문에 우회해서 돌아 가야해서 한참 걸릴 거라던데, 뿅.”

“에엣….”

“그마저도 우선 도착한 비행기 승객 순으로 하고 있어서 우리 결혼식에 맞춰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뿅.”

 

최대한 담담한 투로 말했으나 당황한 건 명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 도리어 대담한 건 따지자면 우성이었다. 당황하던 것도 잠시, 우성은 골몰하는 표정을 짓더니 명헌의 머릿속에서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해결책을 들이밀었다.

 

“그럼 차로 가죠, 형.”

“우성, 미쳤어, 뿅? 거리만 3천마일이야. 비행시간만 5시간이 넘는 거리다, 뿅. 서울에서 부산 가는 수준이 아니라고.” 

“그럼 어떡해요. 어떻게 수락 받은 프러포즈에 어떻게 구한 주례인데. 형은 또 기약 없이 우리 결혼을 미뤄도 좋아요?”

“그럴 리가 있냐, 뿅.”

명헌은 입술을 꾹 깨문 채 불퉁한 표정을 짓는 우성의 머리를 달래듯 쓰다듬었다. 기실 결혼식을 기대하고 기다린 건 우성뿐만이 아니었다. 명헌은 딱 결혼식이 잡힌 기간에 미국 동부에 산발적으로 허리케인이 일어날 확률이라던가 비행기가 불시착할 확률을 가늠했다. 거기에 그 이유로 인해 미국 서부부터 동부까지 횡단을 할 확률은 또 얼마일까. 명헌이 생각하고 예상한 사고와 돌발 상황 중 이런 기묘한 상황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사주와 궁합을 본 후 결혼 날짜를 잡는 건가, 싶었다. 자신들이 길일을 고르지 않아 이 지경인가, 그런 민간 신앙에 기대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래도 가긴 가야지.’

 

명헌도 고작 자연재해로 결혼식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천재지변이라지만 딱히 이길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허리케인이 지금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 이후라는데. 근데 비행기로도 5시간이 걸리는 3천마일의 거리를, 그것도 미국 지리도 제대로 모르는 둘이 제대로 횡단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간일 뿐이었다. 명헌은 호신용 총이라도 구해야할까 고심하다, 이내 홀로 고개를 내저었다. 고민하는 척이라도 하던 명헌과는 달리 우성은 이미 차를 렌트하기 위해 데스크로 향한 지 오래였다. 명헌은 제 무모한 결심이 사그라지기 전에 공항 편의점에서 지도 책자를 하나 구입했다. 어릴 적 부친의 차 조수석에 앉아 펼쳐들었던 지도책과 비교하자면 미국의 것은 훨씬 두텁고 복잡했다. 

 

‘도로는 잘 되어있는 편이긴 하네.’

 

하긴 이 광활한 땅덩이를 공해로만 오고 다닐게 아니라면 잘 되어 있어야겠지. 명헌은 반쯤은 체념에 가까운 생각을 곱씹으며 지도 책자를 덮었다. 지도로 횡단해야하는 거리를 훑으면서도 드는 생각은 예상했던 것보다 가는 길이 위험하지만은 않겠다는 안도감뿐이었다.

 

“우성. 렌트한 차가 이게 확실하냐, 뿅.”

“형, 그래도 나름 웨딩카인데! 남자의 자존심이 있죠!”

“그렇구나. 우성의 자존심은 컨버터블에서 나오는구나, 뿅.”

 

칭찬해달라는 듯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 카의 보닛을 팡팡 두드리는 연하 애인을 보며 명헌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오늘따라 저 머스탱의 붉은색이 열여덟 인터하이 당시 북산의 유니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골치 아프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차종을 바꿔오라 할 수 없었던 건 발갛게 뺨을 물들인 채 소년처럼 웃는 우성 때문이었다. 명헌은 이때까지만 해도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다.

 

“우성. 남자의 자존심은 이제 다 본 것 같다, 뿅. 뚜껑 닫자, 뿅.”

 

그 생각은 로스앤젤레스를 벗어나기 무섭게 사라졌다. 명헌이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 서부였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막과 광야, 모래벌판. 그런 것들 모두 서부극에 나오는 풍경이라는 것이었다. 명헌은 흩날리는 제 머리카락과는 달리 운전하는 우성의 머리가 잘 깎은 밤톨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흙먼지가 엉기기 시작하는 제 머리를 손바닥으로 탈탈 털며, 명헌은 얼른 뚜껑을 닫으라는 듯 우성을 시선으로 재촉했다.

 

“형, 어떡해요!? 고장 났나 봐요!” 

 

망할 백인종 새끼들. 이렇게 인종 차별을 한다 이거지.

명헌은 이빨을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빡빡 갈았다. 그래도 나름 NBA 스타인 정우성인데 그 우성에게까지 이렇게 허접한 장난질을 칠 줄은 몰랐다. 명헌은 이를 으득 갈면서도 애써 웃음을 가장했다. 그래도 결혼하러 가는 길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인해 우성과 얼굴을 붉히거나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연상의 어른스러움을 보이고 싶기도 했다.

 

“괜찮다, 뿅. 시카고 쯤 가면 괜찮아진다, 뿅. 선글라스 꺼내 줄 테니 끼자.”

 

달래는 말에 우성이 애써 훌쩍이며 울음을 삼켰다. 침착함을 가장하는 건 코트에서도, 코트 밖에서도 명헌이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였다. 명헌은 우성을 달래는 말을 하면서도 역시 기다렸다가 우회하는 비행기라도 타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후회를 잠시 했다.

 

“그래도 결혼기념일마다 떠올릴 추억은 크게 남겠네요.”

 

그런 후회도 저 천진하고 순수한 애인의 발언에 흙먼지처럼 사라졌다. 현실이 재난영화면 어떤가. 그 재난 영화조차 로맨스로 바꿔주는 저 철딱서니 없는 애인이 있는데. 혼자 심각하던 명헌이 이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다, 뿅. 그랜드 캐니언을 차로 횡단한다는 버킷리스트도 일찍 이루겠네.”

 

그걸 생각했다면 차를 오프로드 차량을 빌렸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이미 늦은 일이었다. 늦은 일은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다 써버린 파울과 같았다. 명헌은 후덥지근하고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가만히 감았다. 우성이 튼 라디오에선 smash mouth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So what's wrong with taking the back streets

 

절묘한 노래 가사에 웃음이 절로 터졌다. 가사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자니 핸들을 쥐고 있는 우성의 손가락이 까딱거리며 리듬을 타는 게 보였다. 귓가에 흘러드는 노랫말이나 우성의 미소 짓는 표정까지 보고 있자니 뭐 어때, 하는 속없는 생각이 불쑥 솟았다. 데드라인이 있는 과제를 잔뜩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태평한 기분이 들었다.

 

우성과 명헌은 경유하는 길목에 있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필요한 물건을 잔뜩 뒷좌석에 싣고, 기름까지 가득 채웠다. 혹시 몰라 별도로 기름을 추가로 통에 담아 달라 주문하자 가게 점원이 어딜 가기에 기름이 많이 필요하냐며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였다. 졸지에 방화범으로 의심받게 생긴 상황에서도 우성은 눈치가 없는 건지, 순수한 건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랜드 캐니언을 넘을 거예요.”

“오, 갓.”

 

뒤늦게야 우성을 알아 본 직원이 정, 하며 그의 무모한 발언에 놀라는 것도 잠시, 그는 무사히 넘어가라는 말과 함께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명헌은 아련한 낯으로 그저 그 경건한 기도를 마주했다. 그렇지, 이 연비가 거지같은 차로 그랜드 캐니언을 넘는 게 좀 무모하긴 하지. 이미 차를 렌트하는데 우성을 혼자 보낸 스스로를 탓하다 지친지 오래였다. 

 

“덴버에 도착할 때까지 마땅한 주유소나 트럭 스토어가 없을 텐데. 예상하는 것보다 기름이 더 필요할 수 있어.”

 

점원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며 기름통을 추가로 주문할 것을 권했다. 명헌은 그의 말이 장사 수완이 아님을 깨닫고는 그의 말대로 트렁크에 기름통을 두어 통 더 넣었다. 남으면 나중에 넣으면 되지. 가다가 멈춘 차를 길바닥에서 질질 끄는 것보다야 나았다. 직원의 기도 덕인지, 그도 아니라면 기름을 추가로 권유한 그의 선견지명 덕인지 어쨌든 우성과 명헌은 일면식 없는 누군가의 선의 덕에 그랜드 캐니언을 무사히 넘어와 콜로라도에 진입했다. 중간에 트럭스토어가 보일 때마다 서로 자리를 바꿔 운전하며 조금씩 쉰 탓에 무모하게나마 목표한대로 하루 만에 덴버에 다다를 수 있었다. 

 

‘험악한 산지는 이제 넘어왔으니 다음부터는 조금 쉬엄쉬엄 달려도 되겠지. 이번에 제대로 못 본 그랜드 캐니언은 나중에 좀 느긋하게 다시 와서 볼까.’

 

명헌은 내일 지날 길을 한 번 더 훑고는 지도책을 덮었다. 사지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무겁고 고단한 몸을 침대 위에 뉘였다. 번갈아 했다고 한들 10시간이 넘는 주행에 지친 몸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숙소를 금방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찝찝한 몰골로 차에서 불침번을 번갈아서며 자야할 뻔 했다. 눈이 끔뻑끔뻑 감겼다. 시차 적응도 제대로 못한 채 정신없이 달려야했던 하루를 떠올라지나 몸이 절로 고단해졌다. 그렇게 명헌이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겨우 말아 올렸다가, 감기를 반복할 즈음 오픈카를 타고 오는 내내 맞은 먼지를 씻고 나온 우성이 명헌의 곁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금세 몸을 모로 돌아누워서는 지척에 얼굴을 들이미는 통에 명헌은 몰려들던 잠이 한 발짝 달아남을 느꼈다.

 

“형, 내일도 이렇게 달려 야해요?”

“우성, 놀랍게도 하루 만에 삼분의 일을 달려왔다, 뿅. 내일부터는 조금 쉬엄쉬엄 달려도 된다, 뿅.”

“오. 그래도 주유소 직원 덕에 무사히 넘어왔어요. 다행이었죠.”

“그러게, 뿅. 나중에 라스베이거스 다시 가면 그 주유소 또 들러야겠다, 뿅.”

 

적막도 잠시, 웃음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터졌다. 그저 지금 상황 모든 것이 웃겼다. 아마 둘 중 누간가가 없이 혼자만 남은 상황에서 겪은 것이라면 이렇게 태평하고 즐겁지는 않았을 테지만. 일단 지금 여기에는 우성과 명헌이 함께였다. 아마 이런 ‘함께’라는 것에서 오는 위안 탓에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거겠지. 명헌은 우성의 뺨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옅게 웃었다. 문제가 생겨 라스베이거스부터 운전해서 갈 건데 시간에는 꼭 맞춰 갈 테니 결혼식장에서 기다려 달라는 메모도 가족들이 머무는 호텔 프런트에 남겨 두었다.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 안에 보스턴에 도착해야했으니 이제부터는 시간과 체력 싸움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언제나 농구에 있어 40분 풀 코트로 출전하는 우성과 명헌에게 있어 체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이 들어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게 썩 나쁘진 않네.’

 

명헌은 꼼지락거리며 자신에게 달라붙는 우성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샤워 후 따끈하게 열이 오른 몸이 아이 같았다. 명헌은 우성을 안은 채 그의 살결에 코를 박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싸구려 바디워시 냄새조차 달큰하게 느껴졌다. 이상하지. 서른이 다 되어가는 건장한 남성에게서 꼭 아기 분 냄새가 나는 것 같다니까. 명헌은 아마 우성의 머리카락이 희끗하게 새고 저 낯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해도 내내 그를 천진한 소년처럼, 때로는 아이처럼 바라볼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을 지우지 못했다. 피곤함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굴던 우성이 몸을 꼼지락 거렸다. 품 안이 요란해 무언가 싶어 말끄러미 내려다보니 우성이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모양새에 명헌이 눈을 갸르스름하게 떴다. 우성을 끌어안고 그 체온에 잠겨 있어 몰랐는데 이 싸구려 모텔은 싼 방 값만큼 방음이 되지 않았다. 

 

“우성.”

“아니에요! 그냥 자요! 아, 그거 아니고 쿨쿨 잠! 첫날밤은 결혼식 이후로 하고 싶다구요!” 

“…이미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웃기다, 뿅.”

“그래도 허니문만큼은 제대로 하고 싶다구요!”

 

잔뜩 붉어진 얼굴로 빼액 소리치는 모습에 명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우성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래, 그럼 허니문 기대해야겠다, 뿅. 속삭인 말에 우성이 귓가를 발긋하게 물들였다. 응, 진짜 기대해요.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하는 말에 하루정도는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려나,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혼자 생각에 잠시 잠겨있는 사이 우성이 잠이 든 건지 품 안의 커다란 몸이 느리게 들썩였다. 명헌은 곤히 잠이 든 우성의 숨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온전히 잠이 들기 전까지도 머릿속에는 지도 책자를 보며 계산한 횡단 루트가 뱅뱅 돌았다. 시카고까지 가서 하룻밤. 뉴욕 즈음에서 하룻밤. 그리고 뉴욕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면 결혼식 시간에는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운이 나쁘다면 이 꼬질꼬질한 모양새로 결혼식을 치러야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명헌의 그 예상은 꽤나 정확하게 적중했다. 아이오와 주에 들어서고 시카고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주행하는 도로 옆으로 보이는 이리 호도 제법 멋들어져 이런 횡단도 나쁘진 않네, 따위의 맥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장거리 운전으로 지치긴 했으나 우성은 자신과 하는 모든 것이 즐겁다며, 이런 도전도 나쁘지 않다며 웃고 있었다. 그 웃음만으로도 이 어처구니없는 횡단이 아름다운 허니문이 되기는 충분했다. 그런데.

 

“뉴욕 쪽 도로가 많이 망가져서 지나가는데 조금 걸릴 것 같다는데요.”

“…뭐, 아침에 예정보다 조금 더 일찍 출발하자, 뿅.”

 

지금 와서 경로를 틀기에는 모든 것이 애매했다. 애초에 우회할만한 루트가 없거니와 다른 방법을 찾기에 시간도 부족했다. 다행이라면 지금 있는 버펄로에서 결혼식이 있는 보스턴의 말리부 비치까지는 400마일 정도였으니 아침 일찍 출발하면 도로를 조금 돌아도 얼추 결혼식에는 맞출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 삼일간의 긴 주행으로 우성과 명헌 모두 지쳐있었다. 더는 생각할 힘조차 없었다. 이대로라면 허니문이고 나발이고 결혼식을 치른 후 이틀 내리 호텔에서 잠만 잘 지도 몰랐다.

 

‘물론 저 무지막지한 체력의 농구살육머신은 그럴 생각이 없겠지만.’

 

명헌은 호텔의 창으로 보이는 이리 호를 바라보며 햄버거를 우적 씹어 먹었다. 어느새 제 몫의 햄버거를 다 먹은 우성은 수북하게 쌓인 프렌치프라이를 세 네 개씩 집어 먹고 있었다. 명헌은 빵빵해진 볼로 연신 우물거리며 먹는 우성에게 음료를 건네었다. 역시 데리고 살아야겠다. 명헌은 평생 저렇게 입에 맛있는 걸 넣어 주기만 해도 행복한 사람을 우성 외에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이즈 업까지 해서 인당 세 개의 세트를 시켜 배까지 든든하게 채우자 몸이 순식간에 노곤하게 늘어졌다.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을 피로가 너끈하게 이겼다. 명헌은 그대로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었다. 맥없이 늘어져 있는 명헌에게 냉큼 다가 온 우성이 명헌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경직되어 있던 다리가 적당히 힘을 준 손길에 서서히 풀려갔다. 

 

“우성도 피곤할 텐데. 그냥 누워라, 뿅.”

“조금만 해줄게요. 아, 맞다. 아까 호텔 프런트에 연락해봤는데 데비랑 패트릭이 결혼식 날에 말리부 비치에서 세팅하고 손님들 대신 맞이해 줄 거래요.”

“연락이 됐어?”

“네. 걱정 말고 조심히 오라고 하더라고요. 어쩌자고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냐고 데비한테 혼났어요.”

 

허니문 다녀오면 총 쏘는 법부터 알려 준데요.

 

우성이 데비는 농담도 재미있게 한다며 웃었으나 명헌은 데비가 하는 말이 농담이 아님을 알았다. 기실 오는 내내 주유소나 트럭 스토어에서 쉴 때면 흉흉한 시선으로 멍청해 보이는 이 아시안 둘을 바라보는 이들을 명헌은 꽤 많이 보았다. 우성이 미국 내에서도 제법 알려진 유명인이 아니었다면 둘은 그랜드 캐니언 어느 한 곳에 시체로 나뒹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명헌은 조잘거리며 데비가 자신에게 쏟아낸 걱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려주는 우성을 빤히 보며 그의 머리를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응. 우성, 배워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뿅.”

“응? 형?”

 

고개를 갸웃거리는 우성을 보며 명헌은 뒷말을 삼켰다. 명헌은 새삼스레 연하 애인의 미국 생활이 다시금 걱정되었다. 총을 맞지 않고 지난 10여년을 지낼 수 있었던 건 역시 주변에 데비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명헌은 왼쪽 팔이 문신으로 뒤덮인 험악한 인상의 매니저를 떠올리며 한숨을 작게 내뱉었다. 은퇴할 때까지 구단 옮길 일은 더는 없겠지. 명헌은 그런 생각마저도 속으로 삼킨 채 제 다리를 주무르는 우성의 손을 떼어내 제 옆으로 끌어 당겼다. 조금 힘주어 어깨를 눌러 눕히고는 팔을 뻗자 냉큼 머리를 대고 눕는 게 말 잘 듣는 한 마리의 대형견 같았다. 안겨 있는 주제에 꼭 안긴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것조차도 닮았다. 우성이 명헌에 가슴팍에 뺨을 부비며 벅찬 한숨을 토해냈다.

 

“그래도 드디어 내일이에요.”

“잘하면 맞춰둔 턱시도는 못 입을 수도 있겠다.”

“그럼 다른 곳에서라도 입으면 되죠.”

 

초롱초롱 빛나는 시선이 묻지 않아도 그 ‘다른 곳’이 어디인지 말해주었다. 명헌은 말끄러미 우성을 내려다보며 빛나는 눈가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이 발칙한 연하 애인은 늘 자신이 진다고 생각하겠지. 

 

사실은 늘 지는 쪽은 자신인데.

 

명헌은 한숨짓듯 웃음을 흘리며 나지막이 대꾸했다.

 

“…원하면 한 번 정도쯤은 괜찮다, 뿅.”

“와. 형 오랜만에 너그럽다.”

 

실없는 대화가 맥없이 오갔다. 호텔이라고 보기 어려운 싸구려 숙소의 고풍스러움과 촌스러움 그 경계에 있는 인테리어 속에서 우성의 모습만 유난히 반짝였다. 다음에는 이정도의 무모한 거리 말고 플로리다 정도까지 내려가는 건 괜찮지 않을까. 명헌은 그리 생각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내렸다. 폭풍 전야 같은 결혼 전야였다.

 

*

 

도로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미처 다 치우지 못한 무너진 건물 잔해라던가 망가진 아스팔트 같은 것들을 우회를 알리는 빨간 안내판을 따라 가는 내내 마주했다. 통행 가능한 도로는 한정적이었고, 그 탓에 차로 꽉 틀어 막힌 도로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부터 서둘렀으나 예상보다 지체되는 탓에 마음이 초조했다. 예복으로 갈아입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입은 셔츠는 도로를 살피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 탓에 구겨지고 삐져나와 있었다. 꽉 막힌 도심을 벗어나고 매사추세츠 주에 진입할 때 즈음에야 둘은 뻥 뚫린 도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명헌은 초조함에 괜스레 엑셀을 있는 힘껏 밟았다. 며칠을 내리 무리한 차는 아무리 엔진이 좋은 머스탱이었음에도 인간 못지않은 피로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렇지. 장정 둘에 잔뜩 실린 짐까지 싣고 3천 마일을 달린 너도 피곤하겠지.’

 

명헌은 올라가기 시작하는 속도 계기판을 힐끔 보고는 엑셀을 밟던 발에 힘을 조금 뺐다. 초조함이 역력히 드러나는 시선이 연거푸 시계를 훑었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뜯고 있었던 모양인지, 우성이 명헌의 입술에 손끝을 가져다 대었다. 따끔하던 입술에 따끈한 체온이 닿았다. 

 

“괜찮아요. 형. 조금 늦어도 다들 기다려준다고 했어요.”

“…네가 그렇게 기다린 결혼식인데.”

“형이랑 함께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차에 혼자였으면 모를까, 지금도 형이랑 같이 있잖아요. 그래도 주례 선생님은 기다려 주셔야할 텐데. 기다려 주시겠죠?”

 

자신을 안심시킬 땐 언제고. 이 난장판인 상황 속에서도 우성의 걱정거리는 주례 하나 뿐인 모양이었다. 하긴 주례가 없으면 미국은 결혼 선언서에 사인을 못하는구나. 문득 우성과 같은 걱정이 머리를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끼인 노이즈 같은 걱정을 한 켠으로 밀어놓은 후, 명헌은 이젠 자신이 우성을 안심시키듯 웃으며 농담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우성, 오랜만에 존 프레스다, 뿅.”

 

명헌의 말에 덩달아 초조해하던 우성이 기어이 웃음을 터뜨렸다. 주례 선생님이 송태섭만 아니면 되겠네요. 덧붙인 말에 명헌도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빨간 스포츠카. 뒷좌석에 가득 실린 캐리어. 그리고 잔뜩 구겨진, 예복 대신 입은 흰 셔츠까지. 모든 게 다 결혼식과 어울리지 않았으나 결혼 그 자체와 가장 어울리는 존재가 서로의 곁에 있으니 충분하다, 싶었다. 

 

“정우성!! 이명헌!!”

 

노을이 진하게 깔린 말리부 해변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걱정 가득한 현철의 낯이 둘을 반겼다. 이미 예정된 결혼식 시간이 두 시간 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세레머니를 끝내고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 웨딩링을 주고받고 있어야 했다. 명헌은 저 멀리서 걱정스런 시선으로 마중 나온 친구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동을 끄고 부랴부랴 차에서 내리자 해변의 모래에 발이 푹푹 빠졌다. 신발 속으로 모래가 들어와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명헌은 자신에게 손을 뻗는 우성의 손을 마주 잡고는 조명을 밝혀둔 결혼식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준비된 식순은 하나도 지킬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의 결혼식이었다. 입장이니 세레머니는 하나도 지키지 않은 채 폭죽이 터진 길을 따라 달려 기다리다 지친 주례 앞에 섰다. 식순에 맞춰 정해둔 노래는 단 하나도 쓸 수 없었다. 고심해서 고른 것들이었음에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지난 1년의 준비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그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튀어나온

 

“네!”

“네.”

 

라는 대답과.

 

“신랑들. 반지 교환하세요.” 

 

꼬깃꼬깃 구겨진 재킷 안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을 때의 우성의 표정 하나로 모든 것이 보상 받는 기분이었다. 명헌은 예상치 못한 반지에 감격한 우성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언제나 청혼과 함께 먼저 반지를 내밀던 그가 이번에야말로 정말 결혼을 의미하는 웨딩링을 받았을 때의 표정은 예상보다 더 명헌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손가락을 쫙 펼쳐서는 내민 낯이 해변에 깔린 노을보다도 아름다웠다. 명헌이 조심스레 반지를 끼워주자 벅찬 표정을 짓던 우성이 있는 힘껏 자신을 끌어안았다.

 

“주례는 이 혼인이 성사된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그 와중에 주례의 저 한 마디가 뭐라고 이렇게 벅찰 일인지. 명헌은 숨이 막힐 정도로 끌어안긴 상황에서도 우성이 이 상황을 무를 수 없도록 결혼 선언서에 냉큼 사인을 했다. 반지를 매만지며 벅찬 한숨을 내뱉던 우성이 명헌을 따라 휘갈기듯 서류에 사인을 했다. 

 

“이제 이명헌 법적으로 내 거!!!”

“얌마, 멍헌이가 네 친구냐!!”

 

우성의 벅찬 말소리 뒤로 이어지는 현철의 발끈한 목소리에 왁자지껄한 웃음이 이어졌다. 축하한다는 말소리와 박수가 우레같이 쏟아졌다. 명헌은 제 입술에 꾹 입을 맞추는 우성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다, 이내 웃으며 눈을 감았다. 우성의 목에 팔을 감자 허리를 끌어안은 두 팔이 꽉 자신을 잡아 당겼다.

 

왼손 약지에 새로 자리한 웨딩링. 그리고 축하하는 사람들. 법적으로 부부라 공인해주는 문서. 명헌은 정우성이 자신의 배우자임을 알려주는 눈에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을 천천히 훑었다. 

 

‘그렇구나. 그저 허울뿐인 행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인정받는 건 또 다른 느낌이구나.’

 

그저 미국의 작은 일부에서나마 통용되는 서류 하나가 탐났을 뿐이라 여겼다. 명헌은 새삼스레 자신이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도 포기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은 커밍아웃조차 힘든 시대니까. 하물며 둘 다 남자인데 이렇게 공공연하게 축하받고, 축복 받는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자신을 여기까지 끌어 준 손을 맞잡으며 명헌은 요 며칠 사이 가장 편안한 낯으로 웃었다.

“그러게. 이제 정우성도 법적으로 내거다, 뿅.”

 

명헌은 그리 말하며 왼손 약지에 자리한 반지에 입을 맞추었다. 붉게 물든 우성의 얼굴이 기쁨 탓인지, 노을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날도 우냐!”

 

곁에 다가와서는 늘 그렇듯 자신들을 둘러싸고 끌어안는 이들이 있다. 그 사이에 열일곱 그 때와 전혀 변하지 않은 천진한 얼굴로 울고 웃는 제 연인이 있다.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들, 그 사이에서 명헌은 영원을 말하는 성혼 선언문을 떠올리며 웨딩링을 매만졌다.

 

‘한국에서도 약식으로 또 할까.’

 

명헌은 불쑥 솟은 욕심을 고이 접어 넣었다. 그 대신 제 곁에 선 채 같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기는 우성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우성.”

“네?”

 

현철과 성구, 그리고 동오와 웃으며 얘기를 주고받던 우성이 제 부름 하나에 냉큼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오롯이 세상에 자신과 명헌만 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두 눈을 마주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이명헌 하나만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당연하죠. 형은요? 검은 머리 파뿌리 된 이후에도 정우성만을 사랑할거죠?”

 

마음에 작게 똬리를 튼 욕심을 삼킨 대신 드라마 속 고리타분한 성혼선언문을 단 둘이서 다시금 주고받았다. 명헌은 제 대답을 재촉하듯 손을 붕붕 흔드는 우성의 모습에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당연하다, 뿅.”

“아, 제발! 염장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결혼식 한 번 더 했다가는 굶어죽겠다며 현철이 우성의 머리를 마구 문질렀다. 명헌은 손을 꽉 쥔 채 자신을 잡아끄는 우성의 손길에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기어이 노을마저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검게 밤하늘이 내려앉은 해변 위로 텅 빈 결혼식 장식이 늘어져 있었다. 급하게 걸은 그 버진로드를 다시 거슬러, 원래대로라면 들러리로 먼저 입장을 했어야 했을 친우들이 퇴장하는 길목을 앞장섰다. 코앞에 잡아둔 리셉션 장소로 향하며, 명헌은 장장 3천 마일을 달려 온 먼지투성이의 머스탱을 토닥였다. 명헌은 멀어지는 결혼식장을 힐끔 뒤돌아보다, 이내 제 곁에 선 우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어도 지난 사흘을, 아니 오늘의 노을 진 말리부 해변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형. 사랑해요.”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게 웃는 이 날의 우성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결혼반지 속 박힌 다이아몬드보다, 그 웃는 모습이 더욱 단단히, 그리고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형태로 제 안에 박제되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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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e of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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