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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Dance

w. 상

@aesang_u

결혼하는 커플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면서 사랑과 화합을 보여 주는 일.

단순히 춤을 추는 것이 아닌 서로 손발을 맞추며 살겠다는 다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행위다.


“우성, 아까부터 내 발을 계속 밟고 있잖아용.”
“아, 형 진짜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명헌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혀엉, 왜 웃어요. 저 그렇게 못 춰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무룩한 기색이 선명했다. 정우성도 못하는 게 있긴 하구나.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는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퍼스트 댄스였다. 서양의 결혼식에서는 하나의 전통이라고 했다. 결혼하는 커플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일. 이것만큼은 꼭 해 보고 싶다던 우성의 말에 준비하는 거였으나 이런 의외인 면을 발견할 줄은 몰랐지. 음악이 느긋한 박자로 흘렀다. 누가 봐도 운동 좀 했다는 걸 자랑하듯 다부진 몸이 굽혀졌다. 명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한다. 제 발목을 그러잡은 손길이 퍽 조심스러웠다. 여전히 동그란 뒤통수를 눈으로 담으면, 보이지 않는 우성의 표정이 절로 그려진다.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채 걱정을 한껏 머금었을 그 사랑스러운 얼굴이. 


“아프지는 않죠?”
“우성아.”
“네?”
“일어나 봐.”


 제 앞에서만 당연하게 숙여졌던 몸이 세워진다. 그 움직임이 꼭 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저 시선 속에는 조금 전 제 시선 속에 담긴 것과 같은 것이 스며들어 있다. 명헌은 가슴께가 저릿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명헌의 손이 뻗어져 우성의 뺨을 쓸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그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만드는 건 늘 정우성이라는 이름이었지. 기울여지는 고개. 허리를 끌어안은 팔. 겹쳐지는 입술. 명헌은 눈을 감았다. 잦아들었던 음악이 처음으로 돌아가 잔잔하게 퍼졌다. 


여전히 낯설기만 한 언어 속에서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단어는.

Love, Love.

너와 나의 시선 속에 담긴 동일한 것.
사랑이었다. 

*

“명헌이 형, 저 결혼식 두 번 하고 싶어요.”
“재혼하고 싶다는 말을 식 올리기도 전에 하네.”
“아니,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뿅.”
“저희 결혼식 두 번 하면 안 돼요?”


 미국에서 한 번, 일본에서 한 번. 우성. 너 돈 많아용? 사람들은 여기에 어떻게 다 부르려고 그래? 제대로 일본에서 식 올리려면 멀었잖아요. 어리광이 반쯤 어려 있던 얼굴이 사뭇 진지하게 바뀐 것은 순간이다. 크게 하자는 거 아니고 정말 가까운 지인들만 불러도 괜찮고, 둘만 올리는 것도…… 네? 명헌이 형.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고 우성은 말했다. 명헌이 넘어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저 눈으로. ‘최강 산왕’이라는 이름 아래 나란히 놓였던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빛나고 있었다. 둘은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사랑 또한 그랬다. 결국에 합의를 본 것은 제대로 된 식은 예정대로 일본에서 올리고, 미국에서의 결혼식은 단둘이 진행하는 것이었다. 우성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형만 있으면 돼요. 품에 안겨 얼굴을 문지르는 모습이 꼭 강아지와도 같았다. 명헌은 손을 올려 우성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두 번이나 하고 싶어졌어?”
“누가 그러는데, 6 월에 결혼하면 평생 행복한 가정을 이룬대요.”
“…… 그래용?”
“네. 그리고…….”
“그리고?”
“우리 반지도 두 쌍이잖아요.”


 우성과 명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두 쌍의 반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는 날.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두 사람의 프러포즈 날이었다. 

*

우성아, 나랑 결혼해 줄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에도 심장을 담을 수 있구나. 한 음절을 뱉을 때마다 혀끝이 박동하는 것만 같았다. 예상했던 반응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금방 울어 버린다거나,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웃음을 짓거나, 언제 이런 걸 준비했냐며 놀라거나. 경기의 흐름을 읽는 것이 익숙한 것처럼 명헌의 예상은 좀처럼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성의 얼굴에서 보이는 것은 예상과 크게 달랐다.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듯한 얼굴. 그리고 가장 큰 저건…… 당혹스러움. 명헌은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까, 보편적으로 청혼을 받은 이에게 어울리는 표정은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거절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형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형, 우리 언제 결혼하지. 아무리 정우성이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밥 먹듯이 했다고 해도 현실을 봤어야 했는데. 반지 케이스를 쥐고 있던 손이 옅게 떨렸다. 지금 당장 하자는 건 아니라고 할까. 그래, 그게 낫겠지. 비겁한 핑계와도 같은 것이 입 안에서 튀어나오기도 전에 손목을 그러쥔 것은 정우성이었다.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우성은 다른 쪽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어 펼쳤다. 그 안에 담겨 있던 것은 반지 케이스였다. 애써 손만을 담고 있던 시선이 위로 향했다.


형, 이건 반칙이죠.


“제가 먼저 하려고 했단 말이에요.”


 붉어진 얼굴을 한 채 눈물을 매달고 있는 얼굴. 평소보다는 느리게 굴러간 머릿속이 상황 판단을 마친다. 명헌의 입에서 탄성과도 같은 소리가 짧게 흘렀다. 기울여진 고개 탓에 툭 떨어진 눈물이 손목 위로 떨어졌다. 형? 명헌이 형? 울어요? 뒤늦게 인지한 것은 자신도 울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기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주제에 우성은 명헌의 눈물을 닦아 주기 바빴다. 나는, 네가 나랑 결혼하기 싫은 줄 알았어. 평소라면 쉽게 뱉지 않았을 투정이다. 돌아오는 대답의 이름은 틀림없는 다정이었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가 이 순간을 얼마나 꿈꿔 왔는데. 반지, 끼워 주세요. 우성은 왼손을 내밀었다. 명헌의 손이 반지 케이스로 향했다. 반지를 꺼내 든 채로 맞닿는 손가락의 지점은 분명 사랑이었다. 그래, 사랑. 우성은 반지를 낀 손가락을 눈으로 찬찬히 살피더니 제 왼쪽 손을 잡아 올렸다. 마디마다 스치는 은색 링의 감촉이 이렇게 기꺼울 수가 있구나.


명헌이 형, 저랑 결혼해 주세요. 


 명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미소는 그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제 얼굴도 그럴 것이다. 사랑해요. 사랑해. 벅차기 그지없는 사랑이 엇박자로 호흡을 막는 것만 같다. 단지 사랑한다는 말뿐이어도 서로는 알 수가 있었다. 영영 서로를 사랑하겠다는 고백이라는 것을. 부족한 호흡을 찾겠다는 것처럼 맞춰지는 입술은 어느 때보다 달았다. 얽히는 혀가 연신 내뱉는 것은 사랑한다는 고백이다. 형을 영영 사랑해요. 너를 영영 사랑해. 서로의 뺨과 목에 닿아 있는 손에서 반짝이는 반지는 그 맹세의 증거였다. 

*

 어느덧 시간은 흘러 6 월, 결혼식 당일이었다. 둘만의 결혼식인데도 준비할 것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럼에도 그 일들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던 이유는 이명헌이라는 이름 석 자로 충분했다. 꼭 같이 해야 하는 것만 빼고는 제가 다 준비할게요. 자신만만하게 고했던 대로 과정은 꽤 순조롭게 흘러갔다. 준비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퍼스트 댄스를 완성시켜 줄 밴드. 회심의 슛과도 다름이 없었다. 득점을 확신하는 미소가 입꼬리에 담겼다. 미국에 와 처음으로 참여한 결혼식에서 본 퍼스트 댄스는 우성의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한번 해 보고 싶다는 희망 사항과는 조금 달랐다. 상대가 이명헌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으니까. 명헌이 형이랑 결혼할 때 꼭 하고 싶다. 꿈이 구체화가 되어 현실로 마주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 분명했다. 우성은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 벌써 울면 안 되지. 급하게 고개를 들어 확인한 하늘은 흠 하나 잡을 것 없이 푸르고 완벽했다. 밴드를 제외한 모든 것의 확인을 한 번씩 마친 우성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함이 분명했다. 


오늘은 말 그대로 완벽한 결혼식이 될 것이다. 
나와 명헌이 형의 결혼식이니까.


“…… 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감정이 격해지면 튀어나오는 버릇 중 하나였다.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모국어가 나오는 일. 그러니까,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오늘 오기로 했던 밴드가 크게 싸워 해체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식에 올 수 없을 것 같다고. 결혼식이 당장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대체를 할 밴드를 찾을 수도 없었고 어떻게든 책임을 지라며 멤버들을 모으기에도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런 게 어딨어. 정말 이런 게 어딨냐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린다. 보상이나 지불한 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으나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통화가 어떻게 끊겼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 중요한 것은. 순백의 예복을 입은 채 저를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 제가 사랑하는 이명헌. 소매를 매만지고 있는 명헌을 멍하니 쳐다보던 우성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형, 명헌이 형. 미안해요. 


 곧바로 제 쪽으로 와 얼굴을 살피는 모습은 한결같이 다정했다. 제게만 보여 주는, 제게만 허락된 것. 그 다정에 기댈 틈도 없이 억울함과 서러움이 몰아친다. 형. 제가 정말 완벽하게 다 준비했는데. 형한테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뱉은 말과 삼킨 말을 구분할 것도 없이 속상한 감정에 집어삼켜진 채였다. 실망하겠지. 실망할 거야. 애초에 오늘은 순전히 제 억지로 진행한 결혼식이 아니었던가. 그만큼 완벽했어야 했는데. 턱 막히는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끔찍할 만큼 텁텁했다. 


“우성.”
“흐윽, 진짜…… 미안해요.”
“정우성, 나 봐.”
“…… 흑.”
“나는 너만 있으면 돼.”


이건 정말 반칙이다. 


“울지 말라고 한 말인데 왜 더 울지.”


 형이 울렸잖아요. 투정 섞인 말에 명헌은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정말이야. 나는 너만 있으면 된다니까. 결혼식에서 신랑이 이렇게 울면 어떡해용. 6 월에 결혼하면 평생 행복한다며. 웃어야지. 가볍게 쥐었던 손을 겹쳐 잡는다. 식을 올리기로 한 시간이었다. 우성은 잔뜩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고는 웃어 보였다. 단 한 명의 하객도 없이 둘뿐인 결혼식. 꽃잎을 깔아 놓은 바닥을 먼저 걸어간 것은 정우성이었다. 끝에 다다른 우성이 뒤를 돌면 명헌은 한 걸음씩 앞으로 발을 뻗었다. 가까워지는 거리만큼 우성은 심장을 뱉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은은한 웃음을 담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명헌을 마주하면 정말로 결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서. 우성은 눈가로 열이 몰리는 것을 느꼈다. 주위를 가득 꾸미고 있는 향기로운 꽃들보다도 제 눈에 가장 예쁜 사람. 기분 좋은 간지러움으로 속이 온통 들끓었다. 


“춤 출까용.” 
“근데 노래가…….”
“연습 많이 했잖아. 없어도 출 수 있어야지.”


 내밀어진 손을 우성은 망설임 없이 잡았다. 영원히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음악도 들리지 않았으나 스텝의 시작은 실수가 없었다. 내딛는 발이 때로는 부딪히는 등 서툰 움직임이었으나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눈앞에 있는 서로였으니까. 서툰 것과 그 유일의 상성은 분명하게도 사랑의 양상이었다. 살랑이는 바람 소리. 나무에 달린 잎마다 버석이는 소리. 틈마다 스며드는 웃음소리. 그 어떠한 음악과 함께하는 것보다 완벽한 순간이었다. 공백마저도 사랑으로 채울 자신이 있었으니까. 정우성은, 이명헌은. 정우성과 이명헌은.  명헌이 형. 우성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뱉어진 서로의 호칭 뒤로 이어질 것은 당연했음에도 진부하지 않았다. 


사랑해요, 사랑해.


서로가 있기에, 서로가 있음에.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결혼식이었다. 

신랑 정우성 군은 여기 있는 신랑 이명헌 군을 배우자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고 존중하며

일생을 같이 할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신랑 이명헌 군은 여기 있는 신랑 정우성 군을 배우자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고 존중하며

일생을 같이 할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정우성 군과 이명헌 군은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생을 같이 한다는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로써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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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e of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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