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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정의

w. 더독

@D0GFEAR1494

** 누아르 AU입니다. 조금 과격한 언행이나 행동이 나올 수 있습니다. **

 

 

 

 

 

 

사랑에 형태가 있다면 목줄이나 족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곧 자신의 뺨에 닿을 손바닥에 우성은 잠시 눈을 감았다. 충분히 피할 수 있음에도 피하지 않은 건 어쭙잖은 마지막 배려였다. 그것이 상대에게 배려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큰 흠이었지만. 쓰레기 같은 놈. 울먹이며 뱉어내는 상대의 말은 우성이 전전 애인에게 들은 마지막 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아서, 우성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보다 더 전인가? 몇 달 되지도 않은 일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세지도 못할 무수한 연애 중 하나가 끝이 났다, 또.

 

 

 

 

 

 

 

 

 

찰박. 우성이 한 발 내디디면 바닥을 적신 피 웅덩이가 파장을 일으키며 번져나갔다. 연애 한 번 실패했다고 일을 못할 만큼 우울한 시기도 지났고, 우울해질 정도로 마음을 준 사람도 아니었다. 애초에 마음을 준 건 맞을까 돌이켜 보기엔 상대에게 더 미안한 일이었다. 쇠몽둥이를 옆구리에 끼고 있던 우성은 안 주머니에 있는 손수건을 떠올렸다가 바지에 대충 손을 닦아냈다. 그 손수건은 우성에게 건드려선 안될 성역과도 같은 것. 옆에 있던 현철이 이상한 눈으로 봤지만 우성에겐 익숙한 일이라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바로 기술을 걸어왔을 텐데 오늘은 현철이 조용했다. 현철보다 우성이 더 조용해 보이는 탓이다.

 

 

 

 

 

 

" 무슨 일 있냐? "

 

 

" 그냥… 몇 번째인지 세고 있었어요. "

 

 

" 현장 나온 횟수도 세고 있냐? "

 

 

 

 

 

 

징그럽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현철이 우성의 옆구리를 제법 힘 있게 팔로 찍어내곤 먼저 자리를 떴다. 아, 현철이 형…! 고통을 참아내는 건 오로지 우성의 몫이었다. 주변 애들한테 모양 빠질 수는 없어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진짜 우성이 세고 있던 것이 뭔지 현철이 알게 된다면 징그럽다가 아니라 미쳤다고 했을 텐데. 셈을 마친 우성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매번 아직 약속이 유효하냐는 물음에 그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곤 했으나 비틀린 이 약속은 불안정하다. 그럼에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 옆구리를 손으로 문지르던 우성은 곧 현장을 벗어났다.

 

 

 

 

 

 

 

-

 

 

 

 

 

 

우성의 부모님은 금실이 좋았다. 광철은 젊었을 적 소위 말하는 날고 기는 부류였으나, 우성을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조금씩 일선에서 물러나더니 우성의 머리가 굵어졌을 무렵에는 완전히 손을 뗐다. 그러나 일생을 날고 기며 살아왔기에 우성이 자신과 같은 길을 가려는 것을 굳이 막지는 않았다. 광철은 늘 사랑이 멋진 거라는 구닥다리 같은 대사를 술만 마시면 반복했는데, 정작 그것을 느껴본 적 없는 우성에게는 사랑이 그리 멋져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를 만나기 전에는.

 

 

 

 

 

 

우성이 막 간부의 자리에 앉았을 무렵 윗선이 한차례 소란스럽더니 기존의 우두머리가 대뜸 후계자를 공표했다. 대뜸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순식간에 일이 진행됐으나 우두머리가 갑자기 죽은 것이 아니라면 후계자를 지정하는 것은 조직의 암묵적 룰이었다. 상하관계가 확실한 편인 조직, 산왕의 우두머리의 결정에 반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날은 유독 날이 화창한 6월이었다. 아직은 그리 덥지 않은 날씨에 우성은 같이 일하던 부하에게 청첩장을 받았다. 문득 광철의 구닥다리 대사가 자동으로 입력되었으나 곧 털어냈다. 축하한다.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곤 우성은 청첩장을 고이 재킷 안 주머니에 넣었다. 산왕의 미친개 우성은 동기들에겐 싸가지였으나 형, 동생에게는 꽤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선상에 선 녀석들은 한참을 앞서나가는 우성을 끌어내리려는 생각 밖에 없으니, 우성의 입장에서도 당연한 거리였다. 우성은 엘리베이터 가장 상층 버튼을 눌렀다. 오늘 긴급 소집의 안건은 보스의 후계자 공표였다.

 

 

 

 

 

 

 

그런 상황에도 우성은 별 감흥이 없었다. 의리로 결속되어 있을 것 같은 조직은 몸을 불리기 시작하면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핵심 인력만 모인 회의실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적당히 자리를 잡으면 눈에 들지 않는 자리들이 몇 군데 있었다. 가장 좋은 곳은 이미 낙수가 차지해버린 탓에 우성은 등잔 밑이 어두운 자리라고 불리는 회의실 앞쪽 구석을 차지했다. 점점 채워지는 자리에 아는 얼굴과 눈이 마주치면 버릇 없게 고개를 까딱이기를 몇 번, 앞쪽 문을 열고 보스와 그 뒤에 낯선 인영이 따라 움직였다. 얼마 전 구매한 새 휴대폰 화면만 보고 있던 우성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강렬한 첫 만남은 서로의 외형이 아니라 눈에서 결정되는 거 아닐까. 무심한 표정에 알 수 없는 눈동자가 우성과 얽히면 문득, 우성은 강렬한 스파크가 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덜컹. 반사적으로 움찔거린 몸에 회의실 책상이 작은 소음을 냈으나 당장 우성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뛰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빨리 요란한 소리를 냈다. 불규칙하게 튀는 심박수에 우성은 책상 아래에서 손을 꾹 쥐었다. 이명헌입니다. 잘 부탁드려용. 뇌리에 박히는 목소리에 얼빠졌던 시선을 옮기면, 고개를 숙인 남자가 보였다. 광철이 틀렸다. 사랑은 멋지다고 하더니, 숨통을 조여오기만 했다.

 

 

 

 

 

 

명헌이 산왕에 완전히 자리 잡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성은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현철이나 낙수는 이전에 다른 현장을 몇 번 나가봤다고 했다. 생긴 것보다 훨씬 이상한 놈. 현철의 평은 이상하게 모난 곳 하나 없이 오히려 옅은 애정이 담겨있었는데, 우성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미묘하게 불쾌했다. 명헌과 눈이 마주친 이후로 마음 전체가 비틀린 것만 같았다. 한 번만 더 보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은데. 우성은 30분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그 얼굴이 보고 싶었다. 미친 감정이었다.

 

 

 

 

 

만날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물론 물리적인 시간은 그러했으나 우성의 상대적인 시간으로는 한 세월이었다. 우성은 어렵지 않게 자신이 느낀 감정을 사랑이라 인정했다. 부정하거나 의문을 가지기엔 너무나도 확실한 감정이었다. 엘리베이터 가장 상층을 누르는 손에 땀이 베였다. 옷매무새를 만진 우성이 길게 심호흡 했다. 띵. 꽉 맞물렸던 틈이 쉬이 벌어지면 우성은 그 틈으로 발을 내디뎠다.

 

 

 

 

 

 

 

보스의 사무실은 이전과 같은 가구들이었으나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후한 느낌은 사라졌으나 왠지 더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소파에 앉은 우성은 시선을 들어 잘 빠진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선물 받은 차가 있는데 자신이 직접 우려준다는 말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인 결과였다. 우성은 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어냈다. 그럴 리 없지만 이 공간이 덥게 느껴졌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들면 시야에 담기던 뒷모습이 없다. 아? 와악! 어느새 다가와 우성을 쳐다보고 있는 명헌에 우성이 볼품 없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빠르게 뛰는 심장이 감정 때문인지, 흔들다리 효과인지 모르겠다. 마셔용. 뜨겁다, 뿅. 어미에 이상한 말이 붙는 건 현장에 있을 때도 그랬다고 한다. 예전에는 많이 혼나기도 했다는데 꽤 고집이 있어 결국 혼낸 사람이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는 얘기를 현철 통해 전해 들은 것이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그 뒤 대화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명헌은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필요한 얘기와 핵심은 곧잘 전했고 나머지 오디오는 우성이 충분히 채울 수 있는 범위였다. 다만,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우성은 끊임없이 명헌과의 썸, 연애를 상상하다 끝에는 검은 턱시도를 입은 명헌까지 머릿속에서 보고 왔기에 대화에 주의가 필요했다. 한 시간. 길면 길었고 짧으면 짧았던 대화가 끝이 나고 혹시 하고 싶은 말은 없냐는 면접관 같은 질문에 우성이 없다고 대답하려고 했다. 차와 함께 먹었던 다과에 초콜릿이 있었는데, 꽤 잘 녹는 종류였다. 질문을 하고 초콜릿을 먹다 손에 묻은 손가락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장면만 우성이 보지 않았다면 잘 마무리 됐을 텐데.

 

 

 

 

 

 

 

 

" 결혼해주세요. "

 

 

" 뿅? "

 

 

" 네? "

 

 

 

 

 

 

 

결론만 말하면 우성은 반쯤 쫓겨났다. 아니, 그래도 대답은 해주지. 정상적인 사고를 포기한 우성은 바닥을 구두고 툭 차고는 그대로 쭈그려 앉았다. 품을 뒤적여 찾아낸 담배와 부하의 청첩장을 손으로 문질렀다. 일의 원흉이 이것 때문인 것만 같았다. 우성은 이미 엎지른 물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주워 담을 생각은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어쩌겠어. 이왕 엎지른 거, 더 쏟아버려야지. 우성의 막무가내 구애 대작전이 시작됐다.

 

 

 

 

 

-

 

 

 

 

 

 

그 날부터 우성은 명헌의 오른팔을 자처하고 나섰다. 명헌이 가는 곳에는 늘 우성이 있는 상황이 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성에게 명헌의 스케줄을 물어보기도 했다. 우성이 느끼기엔 명헌도 자신에게 꽤 무른 구석이 있어서, 겁도 없이 형이라고 부르는 호칭에도 뭐라고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곁을 내어주기도 했다. 좋아한다는 말이나 결혼해달라는 말은 애써 꾹 참아냈다. 습관처럼 뱉거나 그 의미를 가볍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래도 가끔은, 우성은 자신의 마음을 건넸다. 술을 마시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 마음을 고백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때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 답지 않게 처음에 매인 우성은 사랑에 형태가 있다면 목줄의 형상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도 스스로 매어 상대에게 건네주는 것이라고. 휴대폰 넘어 낮은 한숨이 떨어지면 끊을 때였다. 끝인사를 건네려던 우성보다 명헌의 목소리가 조금 빨랐다.

 

 

 

 

[ 연애 경험 없는 사람은 별로, 뿅. ]

 

 

[ 다른 사람이랑 연애하고 와용. ]

 

 

[ 아홉 명 만나고 나서 그 때, ]

 

 

 

 

생각해볼게용. 달칵. 우성이 인사도 하기 전 전화가 끊겼다.

 

 

 

 

 

 

 

 

-

 

 

 

 

 

 

그 이후 우성의 연애라 쓰고 쓰레기 생활이 시작됐다. 명헌이 바란 것이 이런 형태는 아니었겠지만, 그건 명헌을 사랑하는 우성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형태였다. 의무적인 만남과 헤어짐, 명헌에게 아직도 유효하냐는 물음과 끄덕이는 고개. 다섯 번쯤 됐을 때 우성은 이 모든 것을 그만둘까 하다가 명헌과의 단 한 번의 키스에 마음을 그만두지 못했다. 제 발이 수렁에 빠진 거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우성은 사랑에 형태가 있다면 족쇄의 형상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반복된 지 이제 딱 아홉 번째. 건물 앞에서 담배를 꺼내든 우성은 그 끝에 불을 붙였다. 쉼 없이 뛰는 심장이 쉬이 주체가 되지 않아 숨을 고르면 연기가 함께 밖으로 뻗어나갔다. 사랑이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까지 만들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성은 눈치라는 게 있었고, 우성이 명헌을 보고 있는 것처럼 명헌 또한 우성을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끌리듯 들어간 명헌이 있는 공간은 이제 우성에게도 익숙한 공간이었다. 소파에 늘어지듯 누워있는 명헌의 위로 우성이 내려다보다 몸을 숙여 명헌의 머리 옆에 손을 짚고 거리를 좁혔다. 형. 숨처럼 떨어지는 소리에 명헌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마주한 눈동자가 마치 첫 만남 때처럼 맞닿았다. 우성의 사랑의 정의는 그때부터 시작됐는데, 명헌은 언제였을까. 안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금속성 물질이 손에 걸렸다. 손에 잡힌 것을 꺼내 명헌의 왼쪽 약지에 끼웠다. 명헌은 그것을 말리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일련의 장면들이 스쳐 간다. 형.

 

 

 

 

 

 

" 결혼해주세요. "

 

 

 

 

 

 

기꺼이 찰 수 있는 것, 목 맬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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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e of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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