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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Cloud Nine

w. 듀

이국의 땅에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열기가 온몸을 감싸왔다. 고향에서의 마지막 기억인 눅눅한 초여름의 향을 망각시키려는 건지, 오아후섬의 태양은 자비 없이 타올랐다. 공항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태양신과의 기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명헌은 끝이 뾰족이 올라간 에일리언 선글라스로 자신을 보호했다. 이 아이템을 착용하면 자외선 차단 +40, 시야 차단 +10, 암흑 +10, 간지 +30, 뿅의 가호 +10의 버프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작동 반경이 협소해서 그의 뒤에서 “더워!”를 연발 중인 배우자까지는 커버해줄 수 없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뒷짐을 지고 선 여유로운 자태란 초자연의 심기를 거스르기에 부족함이 없어서, 발끈한 태양은 유리창을 뚫을 기세로 작열했다. 수평형 무빙워크에 몸을 싣고 가던 명헌은 고개를 들어 채광이 쏟아지는 유리천장을 지그시 바라봤다. 선글라스가 없었으면 눈을 뜨지도 못했을 것이다. 6박 7일 동안 잘 익겠는 걸 뿅. 흔들림 없이 이동한 그는 무빙워크에서 내린 다음, 어느 창 앞에 걸음을 멈췄다.

 

“우성 뿅.”

“응. 왜요?”

“구름 뿅.”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뭉게구름이 지상에 닿을 듯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그중 유독 탄력감 느껴지는 구름을 콕 짚었다. 명헌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우성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다급히 입술을 말아 문 표정이 와작 찌그러진 알루미늄 캔 같았다.

 

“흐흡. 구름이 왜요?”

“무지 커.”

 

들뜬 명헌의 목소리를 들은 우성은 뙤약볕 아래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렸다. 아, 무슨 소풍 나온 어린이냐고요~! 지금 이 기분대로라면, 우성은 명헌이 마음에 들어 한 저 구름 위에 올라 번지 점프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명헌 죽도록 사랑해!!” 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그리고 명헌의 품에 안겨 착지하는 아름다운 엔딩. 명헌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뇌를 지배당한 우성이 히죽거렸다. 네네, 구름 좋아요. 예뻐요. 형도 그래요.

 

명헌이 구름 다음에 가리킨 건 이국적인 건물이었고, 그다음엔 곳곳에 솟아난 키 큰 야자수였다. 코코넛이면 몰라도, 나무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명헌은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밖에 나가면 야자수 천지니까요. 꼭 기념사진 찍어요, 우리. 아, 지금 한 방 찍어줄까요?”

 

우성은 가방에서 DSLR 카메라를 꺼냈고 창가에 선 명헌의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는 것쯤 마다하지 않는 열성적인 카메라맨과 렌즈를 직시하며 한 손은 머리 뒤로, 다른 손은 허리에 짚고 포즈를 취하는 범상치 않은 모델. 키 크고 멀끔하게 생긴 20대의 아시안 청년들이 참 귀엽게도 논다. 주변 외국인들이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지나갔다.

 

찰칵. 결과물을 확인해보니 멋쟁이 선글라스를 낀 명헌의 독사진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자연광 너무 잘 받아요, 형! 한 장만 더 찍을게요!”

 

명헌은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린 다음, 입을 한껏 벌린 작살 미소를 선보였다. 그가 중년 남성의 프로필 사진 컨셉으로 찍고 싶어 한다는 걸 바로 알아챈 우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부러 어정쩡한 각도로 셔터를 눌렀다. 이렇게 지체없이 쿵짝이 잘 맞을 때마다 희열이 샘솟는다.

아, 표정 너무 좋아요~. 수고하셨습니다 뿅. 명헌은 바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선글라스를 끼고 다시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습관적으로 뒷짐을 지고 선 명헌의 머리 위로 하얀 햇살이 쏟아졌고 물결치듯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에 윤슬이 생겼다. 그 반짝임을 주시하고 있으려니 폭신폭신 볼륨감 있는 정수리에 얼굴을 푹 파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뒤에서 끌어안다시피 하며 우성이 명헌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역시 곤란하겠죠? 공공장소에서 형을 입에 집어넣는 건?”

“우성 뿅.”

 

뒤통수에 콧김을 뿜어대는 우성의 요상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명헌은 무심히 그를 불렀다. 네? 왜요? 우성의 시선 자연스럽게 명헌의 손끝을 따라갔다.

 

“거미 뿅.”

“아악!!”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오아후 출신 왕거미가 창문 바깥면에 달라붙어 있었다. 혼이 빠져나갈 듯 놀란 우성이 뒤로 나자빠졌다. 주변 사람들이 ‘Are you OK, man?’ 하며 걱정하는 와중에도 명헌은 차분함을 유지했다.

 

“하여간 손 많이 간다니까.”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는데!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아, 정말 형!”

 

우성을 일으켜준 김에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다시 올려다본 하늘은 여전히 웅장했다. 명헌은 구름처럼 몽실몽실해지는 제 뱃속을 느꼈다. 까만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보니 선명한 파란색이 눈을 찔러왔다. 기내지에서 본 사진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재현되고 있는데, 어떻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명헌의 눈동자가 거짓 한 점 섞이지 않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우성의 심장을 추락시킨 거미가 자취를 감출 때까지도 그의 눈은 위풍당당한 파란색이었다.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부터 명헌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프롬 하와이였다. 하와이안 스타일의 안내방송과 각종 서비스, 누가 봐도 하와이에 놀러 가는 차림새의 외국인들까지. 기내에서부터 하와이에 심취해버린 나머지, 까무룩 잠들었을 때도 그곳은 하와이였다. 꿈에서 명헌은 레이를 목에 걸고 훌라춤을 췄고, 그 옆에는 신명 나게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우성이 있었다. 잠에서 깬 명헌이 우성에게 우쿨렐레를 칠 줄 아냐고 물어봤던 건 착륙 한 시간 전의 일이었고, 우성은 그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Welcome to Hawaii!

Welcome to Honolulu!


 

과연 해외여행 명소답게 다양한 피부색의 외국인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나같이 상기된 얼굴들 하며, 활기찬 발걸음과 쾌활한 웃음소리까지. 일상을 탈출한 자들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에 동화되어 명헌의 기분도 고양된다. 공항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웃어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뿅.

한창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더위를 피하고 있던 둘은 렌터카 도착 시간에 맞춰 공항 밖으로 나갔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피부를 감싸오는 순간, 수면 위로 올라온 물고기 체험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혀왔지만, 그 숨 막힘이 딱히 거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과열된 코트 위에서 느끼던 기분 좋은 압박감이 떠올라서 명헌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렌터카를 기다리며 잠깐 넋 놓고 있는 동안, 명헌은 우상과 실없는 잡담을 나눴다.

 

“여행자들이 많아. 당연한 소리지만.”

“저희도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네요! 유럽 여행 이후로 얼마 만이지?”

“2년 정도? …근데 미국 영주권자들이 하와이를 해외여행 취급해도 되는 걸까?”

“음…. 전 미국에 오래 살았어도 거기가 집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요!”

“그런 거치곤 잘 지냈던 것 같은데.”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죠! 마음속으론 늘 형이랑 고향을 그리워했단 말이에요. 알고 있으면서!”

“알지. 징징거리는 너 받아주다가 한번 대판 싸웠었잖아.”

“아! 또 그 흑역사를!”

“뿅~.”

“그래도 앞으로 형이랑 살림 차리면 이제 진짜 집 같아지겠는데요? 역시 가족이 있어야 집이지! 너무 기대된다.”

“나도. 좀 설레네 뿅.”

“헤헤. 어, 저기 차 왔다!”





 

우성과 명헌은 지금, 신혼여행의 성지에 신혼여행을 온 신혼부부였다. 신혼(新婚)! ‘갓 결혼한 상태’를 의미하는 달콤한 두 글자. 결혼식을 올린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으니, 두 사람은 정말 따끈따끈한 신혼이 아닐 수 없다.

6월의 어느 화창한 날, 신랑 이명헌과 신랑 정우성은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서약을 했다. 대본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틀에 박힌 맹세가 아닌, 각자 자필로 써온 편지를 읽어주며 사랑을 확인했다. 서로만 알아볼 수 있는 어떤 신호, 문장 사이에 녹아든 둘만의 추억, 주체하지 못하고 떨려오는 목소리,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말만은 강한 어조로 전해오는 두 사람. 하객들마저 눈시울을 붉힐 정도로 애틋하고 벅찬 결혼식이었다.

명헌의 고향에서 비밀리에 올린 이 결혼식은 가족과 친한 지인들만 모인 스몰웨딩이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특이한 결혼식 내내 장미꽃 향기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벤트성 오락으로 벌인 자유투 대결이 특히 반응이 좋았는데, 명헌 측 하객으로는 정대만이, 우성 측 하객으로는 서태웅이 각자 1등 상품을 가져갔다.

야외 결혼식장에 울린 웨딩마치를 끝으로 꿈만 같던 예식이 마무리되었다. 양측 부모님들에게 인사드린 뒤, 두 사람은 바로 인천 공항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로 날아왔다. 이 신혼여행이 끝나고 나면 동부 위스콘신주로 넘어갈 예정이다. 우성 혼자 살던 집에는 이미 명헌을 위한 공간이 다 마련되어 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빠르게 살림을 합치게 된 데에는 우성의 생떼가 한몫했다는 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었다.


 

오직 정우성 하나만 보고 타향살이를 결심한 명헌의 로맨틱한 결정에 많은 이들이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명헌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당사자로서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우성과의 결혼, 그리고 미국행.

 

명헌에겐 이 주제에 대해 머리털 빠지도록 고심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 이미 수만 가지의 걱정과 두려움을 극복해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용기 낸 것이다. 그래서 명헌은 제 결혼식 자리를 빌려 이런 말을 남겼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되어서 보란 듯이 잘살아 보겠습니다. 나중에 놀러 오세요 뿅.”

 

그러니까 제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감사하다고. 못다 한 진심이 제 사람들에게 무사히 전해진 모양인지, 폭죽 터지듯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아이고, 신랑들이 자꾸 울어서 흐름이 끊기네요.”

 

하객들의 따뜻한 웃음소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가자 뿅!”

조수석에 앉은 명헌이 마법의 주문을 걸자, 우성은 휘파람을 불며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았다.


 

“바다 보인다!”

흰색 자동차가 회색의 아스팔트 도로와 새파란 하늘이 이루는 명백한 경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가 있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앞다퉈 시야에 들어온다.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과 온몸이 타오를 듯한 열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생소함이 벅찼다. 우성이 블루투스로 연결한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플레이리스트 트랙 1번의 묵직한 베이스 소리에 맞춰 심장도 쿵쾅쿵쾅 뛰었다.

창문을 끝까지 내리자 바닷냄새를 품은 바람이 뺨을 진하게 문지르고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도록 내버려 둔 채로 명헌은 두 눈을 감고 이 순간을 느꼈다. 강한 비트의 팝송에 맞춰 고개가 저절로 까딱거렸다. 가만히 듣다 보니 누가 자꾸 코러스를 넣고 있다. 아는 가사만 선택적으로 따라부르는 우성의 귀여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명헌의 입꼬리도 점점 올라간다. 후렴구의 고음 부분에서 우성이 냅다 비명을 내질렀을 땐, 팝콘 터지듯 웃음이 팡! 튀어 올랐다. 둘의 눈이 마주쳤고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조금 이르게 성숙해져야 했던 시절을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철없고 경박하게, 아무 근심 없이 마주 보며 웃는 18살과 19살. 사랑하자마자 이별해야 했던 두 사람이 이 미래를 보게 된다면, 그들은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우성아, 명헌아. 우리 결혼했어. 이제 더는 공항에서 눈물짓지 않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욕하던 미국에 뿌리를 내리기로 했어. 신기하지? 이건 다 꾸준한 사랑의 결실이야. 막힘없이 뚫고 나가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잘살아 볼게.

 

끝없이 펼쳐진 해안도로를 달리며 명헌은 창가에 팔을 기댄 채 바람을 만끽했다. 하얀 햇살을 받은 다이아몬드 반지가 영롱하게 빛났다.





 

호텔에 도착하면 침대에 다이빙부터 하겠다던 명헌은 제가 했던 말도 잊어버리고 호텔 룸을 샅샅이 구경했다. 룸 컨트롤러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며 최신식 시스템에 감탄하던 그는, 자동 개폐되는 커튼이 촤르륵 열리는 순간 펼쳐진 오션뷰에 마음을 뿅 사로잡히고 말았다.

유리창이 투명하고 깨끗한 탓도 있었지만, 바깥 풍경이 너무나 눈 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생하고 입체적이었다. 다이아몬드 헤드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방에 묵을 수 있다니…. 문득 호텔을 예약하고 의기양양 해하던 우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대하라고 큰소리칠 만했네. 칭찬해줘야 할 우성을 찾기 위해 뒤를 돌았더니 언제부터 있던 건지 바로 뒤에 그가 서 있었다.

 

“어, 음, 왜요?”

 

우성은 조용히 명헌을 관찰하고 있었다. 바깥만 보면 감상에 젖는 모습이 마치 집고양이가 창밖을 빤히 바라보는 것처럼 귀여워 보인 탓에, 속으로 온갖 주접을 부리다가 명헌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여기 엄청나게 마음에 들어. 예약하느라 고생했겠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래도 기특하면 상 주세요.”

 

우성이 눈을 감으며 얼굴을 내밀자, 명헌이 냉큼 얼굴을 잡고 여기저기 뽀뽀를 남겼다.

 

쪽. 쪽. 쪽. 쪽쪽쪽쪽. 쭈압!

 

조금 과격한 입맞춤으로 넘어가려던 찰나에,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짐가방과 슈트케이스를 배달하러 온 벨맨이었다. 도톰한 입술 도장으로 거의 세수를 하다시피한 우성이 벨맨을 맞이하러 갔고, 명헌을 만족스럽게 입술을 닦았다.


 

행거에 옷가지를 정리해놓고 명헌은 드디어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침구에서 나는 하얀 냄새와 전신에 감겨드는 안락하고 포근한 촉감이 소름이 오소소 돋을 만큼 좋았다. 장거리 비행과 시차 적응의 피로함이 졸음으로 몰려왔다. 명헌은 두 눈을 감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우성은 어느새 곯아떨어진 명헌을 보고 호텔 룸의 조명과 커튼을 내려버렸다. 아늑한 어둠이 찾아온 침대 위에 우성도 나란히 누웠다. 어차피 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았으니까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잘 자요, 명헌이 형.





 

머리맡에 느껴지는 인기척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뿅…?”

“어, 일어났어요? 베개를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작은 걸로 바꿔주려고 했는데.”

 

높은 베개에 익숙하지 않은 명헌이 자꾸 뒤척거리고 미끄러지는 게 신경 쓰였던 우성은 프런트에 부탁해 유아용 베개를 구해왔다. 명헌의 뒤통수를 살짝 들어 올려 베개만 바꿔준다는 게 그만 그를 깨워버린 모양이었다.

눈을 끔뻑거리며 상황을 살피려는데, 방안이 너무 어두웠다. 의아해하는 명헌을 위해 우성이 룸 컨트롤러 버튼을 눌러 불을 켜고 커튼을 거뒀다. 그제야 캄캄해진 밖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벌써 해가 졌다고? 명헌의 얼굴에 낭패감이 어렸다.

 

“…깨우지 그랬어.”

“헤헤. 저도 좀 잤어요.”

“첫날인데…. 낮에 아무것도 못 했잖아.”

“우리 신혼여행 테마 잊은 거 아니죠? 아직 시간 많아요.”

 

두 사람이 미리 정해 놓은 신혼여행 테마, 그건 바로 자유였다. 시간과 일정에 얽매이지 말고 최대한 즐겁게 놀기. 다소 대책 없어 보일지라도, 한동안 웨딩 준비와 명헌의 이민 준비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둘에게는 휴식이 절실했다. 그래서 무조건 마음 편하게 지내다가 오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배 안 고파요?”

 

꼬르륵 소리가 고요한 방안에 우렁차게 울렸다.

 

“저는 배고파요, 형.”

 

그 말에 명헌은 당장 욕실로 씻으러 들어갔다.





 

피크 타임은 지났지만 식당가엔 여전히 사람이 붐볐다. 예약해둔 식당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거리를 배회하던 두 사람은 어느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에 들어가 2층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쾌적한 밤공기와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 마음을 들뜨게 하는 올드팝 음악 소리, 메뉴판을 보며 신중히 고르는 배우자의 모습.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고 멋진 휴양지의 분위기였다.

 

“정말 놀러 온 것 같고 좋다.”

“우린 이런 분위기가 딱 맞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유럽 여행 갔을 때 그 식당은… 진짜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한 번씩 꼭 생각나더라.”

“그렇게 커다란 샹들리에는 머리털 나고 처음 봤어.”

“조각상들도 대단했죠.”

“둘 다 긴장해서 덜그럭대고 먹었던 거 되게 웃겼는데.”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고요.”


 

2년 전 둘의 유럽투어에서, 우성은 현지인들도 예약하기 어렵다는 어느 품격 높은 식당을 예약했다. 어떻게 뚫은 거야? 아니, 그보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뿅? 이런 것도 우리에게 필요한 경험이라고요? 우성은 자신만만하게 웃었지만, 막상 그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는 심히 동요하고 말았다. 입구에서부터 두 사람을 맞이한 장엄한 조각상들 하며, 천장에는 커다란 샹들리에와 중세 귀족 집에나 있을 법한 장식물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저것들이 언제 머리 위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도저히 식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음식은 제값을 하는 듯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고 작품 같았지만,

 

“…이게 다는 아니겠지 뿅?”

“서, 설마요….”

 

간에 기별도 안 갈 핑거푸드만 연달아 나오자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고 한다. 기가 쭉 빨리는 식사를 끝마치고 나온 둘은 푸드트럭으로 달려가 핫도그를 5개씩 먹어 치우며 허기를 달래야 했다.


 

그 추억을 회상하며 떠드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참치롤, 연어롤, 로코모코, 해물 빠에야, 스테이크, 사이드 메뉴인 각종 튀김 요리들까지. 테이블을 가득 채운 진수성찬 앞에서도 기념 촬영을 잊지 않았다. 비록 허기로 인한 손 떨림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버렸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아 했다. 훗날 이 흔들린 사진을 다시 보게 되면 두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행복해할 것이다.

 

“우성이 많이 먹어 뿅.”

 

스테이크를 싹싹 썰어 우성의 앞에 놔주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형, 먹여줄까요? 아니, 됐어 뿅. 넵. 야외에서 먹는 밥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분위기까지 함께 베어먹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낭만을 음미하기엔 지나치게 굶주렸던 두 사람이라, 식사는 꽤 전투적이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는 게 이런 거구나 뿅. 잔반 없이 깔끔하게 다 먹은 두 사람은 넉넉한 팁과 함께 저녁값을 지불하고 나갔다.


 

중심가를 돌아다니던 중 어느 디저트 가게에서 누군가 파인애플 스무디를 사가는 걸 보고 명헌은 홀린 듯이 똑같은 걸 주문했다. 파인애플 스무디는 파인애플 속을 깎아 그 안에 음료를 담아주는데, 파인애플 겉껍질에 이목구비를 장식한 기괴한 디자인이 명헌의 취향을 저격했다. 명헌은 웬 바보 같은 파인애플을 든 채 만족스러워했다. 첫입을 우성에게 양보하고 나서 다디단 음료를 쭉쭉 흡입했다.

 

“하와이는 정말 아름답구나 뿅….”

 

해가 져도 따뜻했고, 어디를 가도 바다 냄새가 났다. 그리고 파인애플이 맛있었다.

 

“형, 저희 해변 산책하러 갈까요?”

“나도 그 말 하려고 했는데.”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인가 봐요.”





 

규칙적인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하게 뒤섞인 풍경이 신비로웠다. 달빛을 품은 물결의 반짝임은 마치 물 위에 은색 꽃잎을 마구 띄운 것처럼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우성과 명헌은 고요한 북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샌들 밑으로 고운 모래가 푹푹 밟혔다. 맥없이 바스러지는 바닥이 자꾸만 명헌의 걸음을 방해했다. 샌들 안으로 모래 알갱이가 마구 들어와 발바닥에 비벼졌다. 모래의 감촉이 자꾸만 발을 간지럽혔다. 티 안 나게 모래를 털어내 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저와 달리 운동화를 신고 온 우성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수선한 명헌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우성이 명헌의 앞을 막아 세우더니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명헌은 우성의 돌발행동에 당황했다. 우성은 명헌의 발목을 잡고 신발을 벗겨주었다. 발목에 닿은 뜨거운 온기에 살이 익는 느낌이었다.

 

“자꾸 모래 들어가서 불편하죠? 맨발로 다닐래요?”

 

아니면 내 신발 신어도 돼요. 명헌은 당장이라도 신발을 벗어줄 태세인 우성을 말렸다. 모래가 잔뜩 묻은 발로 우성의 신발을 지저분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애초에 샌들을 신고 온 것도 발에 땀 차는 게 싫어서였기 때문에 명헌은 맨발로 자연을 느끼는 쪽을 택했다. 한낮의 열기가 남아 애매하게 따뜻한 땅이 피부에 닿았다.

우성은 명헌의 샌들을 한 손에 덜렁 들고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명헌의 손을 잡았다. 명헌의 귓가엔 파도 소리만 맴돌았다. 끊임없이 밀려들며 부서지고 또 부서지는 파도 자락. 우성이 명헌을 보며 다정히 웃는 순간 철썩거리며 강한 파도가 쳤다. 질질 이끌려가는 젖은 모래처럼 그에게 한없이 이끌린다.

손을 잡고 맨발로 해변을 거니는 내내 명헌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따뜻하고 습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힌 탓인지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 했다. 둘 사이에 찾아온 침묵까지 더해지자 긴장감에 여기저기 땀이 차는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 우성과 눈이 마주치면 우성은 조용히 웃기만 한다. 발밑에 우그러지는 모래더미처럼 가슴이 술렁댄다. 괜히 시선을 피하며 바다를 바라봤다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우성을 멈춰 세웠다.

 

“우성 뿅.”

“응. 왜요?”

“부부 사이에 비밀이 있는 거 어떻게 생각해?”

“네…? 명헌이 형, 저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요?”

“응.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해?”

“…비밀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 다 알고 싶어요. 말해줘요.”

“그래. 너만 알고 있어라 뿅.”

“…네. 저 준비됐어요.”

“…아니야. 안 되겠어. 못 들은 걸로 해.”

“아?! 그러는 게 어딨어요? 알려줘요! 진짜 비밀 지킬 테니까!”

“그래? 그럼 귀 좀 대봐 뿅.”

 

이건 바다가 엿들으면 안 될 얘기니까. 얼토당토않은 말에 토 달지 않고 바로 귀를 대 줄 수 있는 건 정우성뿐일 것이다. 그의 하해와 같은 애정에 숭배하는 마음을 담아, 애틋한 입맞춤을 남겼다.

 

쪽-.

 

“결혼식 때보다 네가 더 좋아졌어.”

“…….”

“이보다 더 사랑할 수 없겠다던 말은 취소야. 난 이 마음이 어디까지 커질지 모르겠어.”

“…….”

“사랑해, 우성아.”

 

뺨에 기습적인 뽀뽀를 받은 우성이 멍하게 명헌을 쳐다봤다. 순식간에 불타는 고구마가 된 우성이 명헌의 손을 더 꽉 쥐었다.

 

“…전 형이 이럴 때마다 형을 더 사랑하게 되는걸요. 저도 뽀뽀해도 돼요?”

“그래. 와라 뿅.”

 

명헌의 허락이 떨어지자 우성은 고개를 비틀어 명헌의 입술에 돌진했다. 우성을 닮은 맹랑한 파도가 철썩였다.





 

해수욕장을 나오면서 우성은 명헌의 모래 묻은 발을 손수 털어주며 신발을 신겨주었다. 부끄러움에 꼼질대는 발가락을 보며 우성은 명헌을 놀렸고, 명헌은 그 놀림을 세 배로 쳐서 갚았다. 엉덩방아 찧으며 울상 짓는 우성을 보며 그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주저앉힌 우성을 다시 일으켜 세워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힘차게 팍팍 털어줬다. 남들 다 보는 데서 엉덩이를 팡팡 맞고 있던 우성은 일부러 세게 치는 거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했고, 긍정의 답변이 따라오자 할 말을 잃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됐다.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명헌은 먼저 씻겠다며 욕실에 들어갔고 그의 뒤를 자연스레 따라 들어가던 우성은 쫓겨났다.

 

“아, 왜요! 같이 씻어요! 우리 그래도 되는 사이잖아요!”

“너랑 씻으면 한세월 걸려서 팅팅 불어. 고로 거절한다 뿅.”

“매정해! 우리 신혼인데 너무 무드 없는 거 아니에요?”

 

우성의 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명헌은 옷을 훌렁훌렁 벗어 우성에게 패스했다.

 

“대기하고 있다가 나 씻고 나오면 가운 대령해라 뿅.”

“…네.”

 

옷가지를 품에 안고 조신하게 대답하는 우성을 보며 웃은 명헌은 샤워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일부러 욕실 문은 닫지 않았다.


 

가운 차림의 촉촉한 두 남성이 동그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룸서비스로 주문한 와인이 한 병 놓여 있었다. 우성이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는 동안 명헌은 밖에서 사 온 파인애플 젤리를 야금야금 씹어먹었다.

 

“술도 약한 주제에 웬 와인이야 뿅.”

 

우성은 와인 한잔에 알딸딸 취해버릴 만큼 주량이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둘의 데이트에선 술이 등장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어쩐 일로 우성이 먼저 술을 주문한 것이다. 걱정 섞인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분위기 내고 싶었단 말이에요. 자기 전에 한 잔씩만 해요.”

 

그놈의 분위기. 그놈의 무드. 좋아 보이는 건 아무튼 다 해보고 싶어 하는 우성을 보고 있으면 고작 한 살 차인데도 설 늙어버린 제 모습과 비교되어 기분이 묘해질 때가 있었다. 사실 우성이 이러는 건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고픈 마음에 기반한 노력이다. 명헌도 이젠 안다. 우성을 안 지 햇수로 10년째. 사랑한 시간도 그에 근접하니까.

명헌은 의자를 당겨 앉은 다음, 제 몫의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사 해봐 뿅. 없으면 허전하잖아.”

“음…. 명헌이 형의 첫 해외 살이, 그리고 우리의 즐거운 신혼 생활을 위하여…? 어때요, 괜찮았어요? 몰라요, 그냥 짠~.”

“뿅~.”

 

크리스탈 잔이 맑게 부딪쳤다. 결혼식 전 턱시도 핏을 위해 감량하느라 한동안 스스로에게 내렸던 금주령의 봉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복숭아색의 로제 와인을 한 모금 넘기자 매끄러운 질감과 함께 온갖 상큼한 과일 향이 입안을 풍부하게 채웠다. 이것도 나름 술이라고 와인 특유의 드라이한 텁텁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색깔과 향이 주는 달콤함 덕분에 오늘 같은 날 가볍게 마시기 딱 좋게 느껴졌다. 명헌은 마음에 들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콜록, 콜록…! 써!! 아니, 색깔이 분홍색인데 왜 이렇게 쓴 거죠?!”

 

와인을 잘 골랐다고 칭찬해주려고 했더니만. 이미 당사자는 본인의 선택에 한껏 후회하고 있었다. 쓴맛에 면역이 없는 우성에겐 이 정도도 무리였던 것이다.

 

“혹시 복숭아 주스 같은 걸 기대한 거야?”

“흐헝!”

“그냥 물이나 마셔, 너는.”

 

명헌이 냉장고에서 시원한 냉수를 꺼내왔다. 뚜껑을 따서 내밀자 우성은 단숨에 들이켰다. 분위기 잡는 거보다 애 잡는 게 먼저겠어 뿅. 평온함을 되찾은 우성이 의자에 추욱 늘어졌다.

 

“저도 젤리 주세요.”

“받아 뿅.”

 

명헌이 던진 젤리가 우성의 입안에 깔끔하게 들어갔다. 짝짝짝 손뼉 치며 좋아하는 모습도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았다.


 

흥미 없어진 와인은 방치해놓고 젤리만 털어먹던 두 사람은 침대로 넘어와 남은 5박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나 하기로 했다. 아무리 여행 테마가 자유라고 한들, 계획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문제였다.

 

“하와이씩이나 와서 먹고 자고 바다만 봤다고 하면 황당해할까?”

“누가요?”

“누구든 간에. 하와이에서 뭐 했냐고 누군가는 물어볼 거 아니야.”

“먹고 자고 바다를 봤으면 다 한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해.”

“아마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만요.”

“어차피 우리 여행인데 뭐.”

“맞아. 난 형이랑 같이 숨만 쉬고 있어도 좋아.”

 

머리 맞대고 있는다고 계획이 저절로 세워지진 않았다. 남들이 의외라고 여기는 게 하나 있다면, 명헌과 우성은 여행을 자주 다니는 타입도 아니거니와 익스트림한 활동을 즐기는 편도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20대 초에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내며 휴식 없이 달려오기도 했고, 서로의 부재 또한 영향을 줘서 마음 편히 놀러 다닌 적이 없었다. 열심히 살아온 두 사람에게 주어진 건 넘쳐나는 돈과 시간, 그리고 남은 인생을 함께할 배우자. 어느 미래엔 이 부부가 여행의 즐거움을 깨우칠 날이 올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게 오늘은 아니었다.

결국 무계획 신혼여행을 합리화시킨 거 외엔 딱히 해낸 일이 없다. 자정이 다가오기 4분 전,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서 천장만 노려보고 있다.

 

“역시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겨야 하나….”

“명헌이 형.”

“왜용.”

“저…, 계획이 하나 있긴 한데….”

“뭔데.”

 

우성이 명헌 쪽으로 돌아누웠고 명헌도 자세를 바꿔 우성을 마주했다. 입술을 삐죽이며 조금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결국 엉큼한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하루 정도는 호텔에서만 지내보는 거 어때요? 여기서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잠깐의 정적 후, 기침 터지듯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성은 명헌의 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빨리 동의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해왔다.

 

“정우성 취했냐 뿅.”

“아, 아니에요! 저 진지하게 말한 건데?!”

“온종일 호텔에서? 오…. 자신 있나 봐?”

 

한 살 어린 명헌의 남편은 상대가 도발해올수록 불타오르는 성격이었다. 놀리는 어투에 발끈한 우성이 명헌의 위로 올라타 그를 내려다봤다. 명헌이 좋아하는 예의 그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시도해보기 전까진 모르죠?”

 

우성의 팔 안에 갇힌 명헌에게서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우성을 응시했다. 와인 한 모금에 취했다고 하기엔 우성의 눈은 맑고 또렷하기만 했다. 제정신으로 이런 소리를 하다니 건방져용. 우성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코끝이 접촉하는 지점에서 멈추어 섰다.

 

“형, 왜 웃기만 해요? 저 못 믿어요?”

 

우성이 고양이처럼 코를 비비며 애교 있게 말했다.

못 믿냐고? 못 믿긴. 오히려 그 반대라서 문제인데. 하루가 아니라 남은 5일 내내 여기 자발적으로 갇혀 지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고민하게 된다. 밀어낼까, 말까. 입술이 닿을 듯 말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의 달콤한 숨결이 피부를 간지럽혔다.

 

…이렇게 대책 없이 사랑만 해도 되는 건가?

아, 되는구나. 우리 결혼했으니까.

 

자문자답을 끝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명헌은 우성을 옆으로 자빠뜨리며 그 위를 차지했다. 순식간에 자세가 반전됐다.

 

“시도는 같이해야지. 부부잖아.”

 

명쾌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호선을 그린 입술끼리 부드럽게 맞닿았다.





 

호텔 밖에 나가질 않는 뜨거운 신혼부부.

신혼여행의 성지인 하와이에서 이 정도는 흔히 볼 수 있는 경우 아닌가…? 아니면 말고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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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e of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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